그럼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살아주렴

by 단팥

요즘 뉴스를 보면 자식을 죽이는 어미들이 왜 이렇게나 많은 걸까. 포털에 올라오는 뉴스에 손을 대서 열어보는 일이 겁이 날 지경이다. 그만큼 세상이 흉흉하고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는 증거인지. 설령 그렇다고 해도 인간이기 조차를 포기한 그녀들게 연민조차 생기지 않는다.


예전에 내가 살던 동네는 구도심의 낙후지역이었다. 다세대 주택이 오밀조밀 밀집한 그곳에는 기초 수급자나 다문화 가정이 참 많았다. 참 슬픈 일이지만, 사람이 그렇다. 배가 부르고 따스한 기본 조건이 충족되면 자식에게 관심과 애정을 쏟게 되고 본인 삶이 힘들고 지치면 자식도 버겁다. 인간이 어떻게 그러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인간이기에 그렇다고 할 수밖에 없다.


우리 아이가 다니던 학교에는 엄마가 어떻게 그렇게 하냐는 탄식이 나올 아이들이 몇 있었다. 그래서 사실 요즘의 뉴스를 볼 때마다 난 그 아이들이 떠오른다. 어느 자매는 엄마가 없는 집에서 둘이만 살기도 했다. 온갖 쓰레기가 집에 꽉 들어차 있고 난방도 되지 않는 집에서 한겨울을 3학년 4학년 두 아이가 버텼다. 어느 날은 늦은 밤 동네를 떠도는 그 아이들을 데려다 밥을 먹였고 학교 담임선생님께 의논을 했다. 저 아이들을 구제할 방법이 없느냐고. 그러나 학교에서도 별 다는 수단은 없다고 했다.

막막했다. 법이 그렇다니 도울 방법이 없었다. 그때 학교에서 보았던 또 다른 아이는 엄마의 방임 속에 혼자 컸고 18살이 된 지금은 원룸에서 혼자 산다고 했다. 엄마가 월세를 내주다 끊기면 아이는 페이스 북을 통해 돈을 번다고 하나 그 방법이 너무 참혹해 나는 이곳에 다 적지도 못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들은 상을 살아가고 있다. 자신들을 돌봐 줄 이 하나 없는 이 세상을. 나는 우리 아이에게 가끔 그 아이들의 안부를 묻는다. 우리 아이도 내 마음을 잘 알고 SNS의 모습을 통해 안부를 전해준다. 잘 있는 것 같다고. 학교에 다니거나 혹은 고등학생이 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삶을 살고 있노라고 전한다.


뉴스에 채 나오지도 못하고 사각지대 안에서 숨죽이며 삶을 이어 나가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내가 보았던 아이들만 해도 몇인데 이 넓은 대한민국의 땅에서 어른의 보살핌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주어진 신비한 능력으로 숨을 쉬고 살아간다. 아이는 어쩌면 어른보다도 더 강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참말 신기하게도 어둠 속에서도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을 보면.


모든 것을 포기한 듯했다던 정인이의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의 증언이 담긴 기사를 읽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아이들인데, 어른의 도움이 없이도 자라고 또 자라날 수 있는 이이들인데. 얼마나 무서웠을지 얼마나 절망스러웠을지. 아이가 느꼈을 고통의 무게는 이 지구의 무게보다도 더 무거웠을 것이다.


무서운 병이 뒤덮은 이 도시의 한 구석에서, 부모의 학대와 방임을 겪으면서도 삶을 이어가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부디, 꼭 살아 있어 달라고. 무럭무럭 자라나 꼭 빛을 보고 싹을 틔워 달라고. 너는 꼭 좋은 어른이 되어 나쁜 어른을 이겨주거라. 이 또한 무기력한 어른의 욕심 많은 기도임이 분명하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에 없다.



사진/ 영화 '어느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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