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때문에 친구가 뜻하지 않게 실업자가 되었다. 한국의 법인을 정리한다는 회사의 통보를 받고선 막막해했던 것이 작년 가을이었는데 업무 정리를 모두 마치고 올 2월 친구는 퇴사를 했다.
섭섭하기도 했지만 그동안 회사에서 부딪히던 수많은 사건들로 인해 자진 퇴사를 고민했던 친구는 오히려 이렇게 된 것이 잘됐다 했다. 다행히 남편 일이 잘 되는 편이라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친구는 천천히 새로운 일을 알아보는 중이다.
그런데, 퇴사를 기념해 내가 선물을 주어도 시원찮을 판에 퇴직금을 받았다며 친구가 거하게 한턱을 쏘았다. 맛난 밥과 디저트까지 먹고 미용실을 데려가 새치까지 염색해주는 풀코스의 접대를 받았다. 미안하기도 하고 황송하기도 했다. 나는 늘 해주는 것도 없는데.
미용실에서 둘이 앉아있는데 문득 친구가 로봇 청소기를 하나 사주고 싶다고 한다. 자기가 써봤는데 너무 좋더라며. 중소기업 제품이라 비싸지도 않으니 부담 갖지 말고 받았으면 하고 내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하루 종일 공짜 대접을 받자니, 가슴속 저 아래 양심의 뿌리마저 사라지는 듯, 로봇청소기? 하고 기쁜 마음이 먼저 올라왔다. 아뿔싸. 정신을 차리고 친구에게 괜찮다고 마음만 받겠다고 손사래를 쳤다.물론 공짜는 좋다. 더구나 친구가 좋은 마음으로 사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마음은 거기까지만 받아야 할 것 같았다.
속담 중에 ' 행랑을 빌리면 안방까지 든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지금은 친구가 해주는 사소한 호의 하나를 들이지만, 아마도 난 마음속으로 그보다 더 큰 것을 바라게 될지도 몰라 친구의 선한 마음엔 미안하지만 덜컥 겁이 났다.
사람이 그렇다. 나에게 하나를 내어주는 이에겐 고마움을 느끼다가도 그다음엔 더 큰 것 하나를 원하게 되고 이전과 같이 해주지 않을 땐 또 서운하게 된다. 이렇게 사람의 마음이 얄궂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공짜를 바라는 마음은 더 커져버리고 만다. 친구나 지인에게 내 마음의 오지랖을 부려 큰 마음을 내어놓고는 그들이 그다음에 더 큰 마음을 요구할 때 화가 나고, 반대로 내게 그것이 오지 않을 땐 서운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우린 착하고 선한 마음을 받을 땐 더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
그래서 이번 친구의 선물은 받지 않고 싶다. 고맙고 따스하고 선한, 그녀의 마음을 가슴에 깊이 간직만 하고 싶다. 그걸로도 정말 충분하니깐.
다음번 친구를 만나면 나도 정말 맛있고 따스한 식사를 대접해야지 다짐을 한다. 마음은 참 얄궂게도 또 마음만으로 갚으면 서운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