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후배 한 명이 답답한 마음을 전해왔다. 이야기인즉슨, 관광업에 종사하는 남편이 일 년이 넘도록 벌이가 없는데도 돈을 벌 생각을 안 하고 그저 버티고만 있다는 것이다. 맞벌이 가정이라 당장은 아내의 수입으로 먹고살 걱정은 안 해도 되니 아마도 코로나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아 보였다.
후배는 지난 일 년간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이 시간을 버티는 것보단 가장의 책임감을 갖고 무엇이라도 해보려고 하는 남편의 의지를 기다렸다. 그러다 후배는 남편에게 슬쩍 요즘 배달 알바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어렵게 말을 건넸으나, 남편이 너무 자존심 상해하여 서로 다투고 말았단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좀 더 열심히 살아주면 좋으련만, 자신이 가장이 되어버린 현실이 답답하고 화도 난다는 후배의 말에 마음이 아팠다.
후배의 이야기를 듣는데 문득 예전 근무처에서 오래 봐왔던 택배기사님이 생각났다. 기사님의 다리가 안 좋아져 혼자만 배달 일을 하기가 어려워지자 학생으로 보이는 딸이 함께 다니며 겨울 내내 아빠 일을 도와주었다. 아픈 아빠와 함께 무거운 택배를 들어주는 딸을 보며 나는 '기사님 딸 정말 잘 키우셨어요!'하고 칭찬을 했다.
자존심은 그럴 때 세우는 것이다. 내 가족이 아프고 힘들 때, 우리 가족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내가 힘이 되어야지!'하고 나서서 돕고 함께 이겨내는 것. 그것이 진짜 자존심이다.
그래서 난 온 가족이 먹고살아야 하는 그 숭고한 일 앞에서 배달 일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말하는 후배 남편의 뒤통수를 한대 치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서로의 마음이 같지 않다는 건 참 사람을 힘들게 만든다. 열심히 살아가려는 아내와 못난 자존심을 세우는 남편이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함께 살아 나갈까. 어쩌면 수십 년이 지나서야 그는 깨닫게 될까. 그땐 자신이 참 모자랐다고. 그 후회가 평생의 회한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