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캔커피 하나

by 단팥

출근을 하고 잠시 숨을 고르고 있던 9시쯤, 홍보용 전단지와 이쑤시개, 휴지를 들고 중국집 배달 아저씨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90도로 깍듯한 인사를 마친 아저씨가 그것들과 함께 내민 것은 다름 아닌 뜨거운 캔커피. 그날은 예상치 못하게 기온이 뚝 떨어진 날이어서 그랬는지 아저씨의 캔커피는 너무 따뜻하기만 했다.


꼭 한번 시켜주세요. 최선을 다해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아저씨는 내 손에 캔커피를 쥐어주며 다시 깍듯한 인사를 마치고는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리 층을 벗어나셨다. 뜨거운 캔커피를 손에 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마셔보고는 싶었지만, 나이가 들며 카페인에 예민해져 직접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아침마다 만들어 텀블러에 넣어 다닌 지가 오래된 터였다. 그날도 이미 커피를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추억의 레쓰비 캔커피. 어릴 적 티브이 광고에서 ' 저 이번에 내려요.' 하는 카피가 유행이었던 그 캔커피였다. 참 오랜만이네 하며 뜨거운 캔을 손에 쥐고 추억을 떠올려보았다.

손난로가 흔하지 않던 시절, 겨울에 손이 시리면 캔커피를 사서 호주머니에 넣어 손에 쥐곤 했다. 시험이 다가오면 쉬는 시간 친구의 책상 위에 올려놓고 오기도 했고. 어느 순간부터 아메리카노가 유행하고 커피전문점이 늘어나며 캔커피는 그렇게 기억에서 잊혔다.

아주 오랜만에 만져보는 이 따스한 걸 누구한테 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마치 귀한 물건처럼 그냥 두긴 아까웠다. 하지만 내 주변의 동료들 모두 이미 커피를 손에 들고 있는 상황. 참 아쉬웠다. 따스한 온기가 가시기 전에 누군가에게 이 커피를 주고 싶은데.

그때였다. 마침 사무실에 퀵서비스가 필요해 부른 배달 아저씨가 방문한 것이. 잘 됐다 싶어 바삐 가는 아저씨를 붙잡아 캔커피를 드렸다.


이거, 괜찮으시면 드실래요?

와, 너무 감사해요. 따뜻하네요 아주. 잘 먹겠습니다!


배달 아저씨가 너무나 고마워하며 커피를 받아 들었다. 장갑을 낀 두 손에 따스한 캔커피를 들고 웃는 눈을 보니 내 마음이 더 포근해졌다.

고작 캔커피 하나였다. 그것도 내가 부러 산 것도 아닌 얻은 것을 주었을 뿐이었다. 나에게 필요 없는 것이 때론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나는 큰 마음을 담은 것도 아니었는데 누군가에겐 스함이 될 수도 있다 것이 기뻤다.

추운 겨울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출발이 꽤 좋은 아침이었다.





사진/영화 '윤희에게' 스틸 컷.

내용과 상관은 없지만 겨울이 되니 그리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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