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퇴근길에 라디오를 듣는다. 사운드 클라우드에 받아놓았던 음악들이 지루해지기도 했고, 괜히 라디오를 듣던 옛 생각이 나기도 했기 때문이다.
라디오를 들었던 추억은 언니와 함께 들었던 '별이 빛나는 밤에'였다. 이문세를 좋아하던 언니를 따라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는 라디오 앞에 턱을 괴고 앉아 같이 들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기 시작했다. 록이나 팝은 철수 아저씨가 가르쳐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독서실에 앉아, 하라는 공부는 않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열심히 라디오를 들어며 낙서를 하던 기억이 있다. 메모장에 감성 가득한 것들을 잔뜩 써놓았던 것 같기도.
오래간만에 배캠을 들으며 퇴근을 하려니 옛 생각이 났다. 눈을 감고 교복을 입고 버스에 앉았던 그때의 나를 떠올리자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꿈 많던 소녀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것일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오늘도 월급이라는 것을 받기 위해 마음을 집에 두고 왔을 줄을, 그때의 소녀는 몰랐겠지.
만일 그때로 돌아간다면 난 제대로 한번 다시 살아볼 수 있을까? 한 서른 즈음까진 그런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그러나 세월이 더 지난 지금의 나는 글쎄, 글쎄 하며 고개를 젓는다.
내가 했던 수많은 실수들, 타인으로 인해 받았던 아픔들. 또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주었던 상처들. 만일 다시 살아본다면 정말 좋은 사람으로, 똑똑한 사람으로 살아보고픈 욕심은 있다. 그러나 고되고 힘들었던 세월을 또다시 살아보고픈 마음은 들지 않는다. 지금의 이런 마음을 갖기까지, 나는 얼마나 다치고 아파야 했던가. 다시 산다면 정말 하나도 아프지 않고 행복하기만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데.
옛 추억은 그래서 지나간 것일 뿐이다. 다시 돌아갈 수 없음을 알기에, 그러고 싶지도 않기에. 오늘의 이 마음 또한 예전의 내가 차곡차곡 쌓아 온 공든 탑인 것을 알기에 그렇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영화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 좋아하는 대사가 있다.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을 뿐, 마지막 도착하는 곳은 같다.
아마 나 또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더라도 결국은 돌고 돌아 지금을 살고 있을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돌아갈 수도 없지만, 난 돌아가지도 않기로 한다.
내가 만난 오늘과 내가 만날 내일이 더욱 값질 수 있도록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아야겠다는 흔하디 흔한 다짐만을 해본다. 너무나 평범했지만 그래서 평온했던 어제를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