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엄마, 난 이제 좋은 딸 하지 않을래.

by 단팥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내가 엄마의 생일을 잊어버린 것은. 해마다 엄마의 생일을 챙기는 것은, 아니 온 가족의 생일을 챙기는 것은 늘 나의 몫이었다. 엄마 생일 2주 전에 언니 오빠에게 연락하고 조직(?)해 식당을 예약하거나 선물을 준비하는 것, 그리고 엄마에게 이번 생일은 무얼 드시고 싶은지 무엇이 갖고 싶은지도 미리 여쭤 보는 것도 필수였다.


그런데.

하필 코로나라는 놈 앞에서 근 이십 년 가까이 해오던 좋은 딸 루틴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작년 2월부터 아이들의 사계절 방학 때문에 머리에 꽃 하나 달고 널을 뛰며 살아야 했으니, 무엇 하나 잘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어찌하랴. 나도 사람인 것을.


엄마의 생일이 하루 지난날, 난 불현듯 그리고 아주 불안하게도 어제가 엄마의 생일인 것을 기억해 냈다. 얄궂은 기억력의 장난질인지. 하필이면 당일 저녁도 아닌 하루가 훨씬 지나 출근해서 기억날 게 뭐람.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해 '엄마 내가 너무 미안해'라고 혀가 닳도록 빌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엄마의 서운한 그 마음이 이해가 가기도 했지만 나 또한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루 왕복 세 시간 거리의 출퇴근에 살림에... 지칠 대로 지친 딸에게 한번 너그러운 마음으로 지나갈 순 없었을까? 작년엔 상다리가 휘어지게 뷔페식으로 밥도 해드렸건만.

가슴속 저 깊숙한 곳에서 이제 좋은 딸 노릇은 그만 하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쳐 올라왔다. 난 엄마의 감정 처리소로 살아왔다. 엄마는 늘 속상한 일이 생기면 나에게 하소연을 해왔고 아빠랑 다툼이 생기면 우리 집에 달려와 내게 한풀이를 했다. 듣기 좋은 풍월도 하루 이틀이지, 늘 나에게 온갖 감정을 쏟아붓는 아이 같은 엄마를, 이제 감당할 자신이 없어 사실 요 몇 년간 요리조리 엄마와의 시간을 피하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난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 또한 접어두기로 했다. 불효녀는 나중에 엄마가 없을 때 그리워하며 울고불고 후회를 할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나도 좀 살고 봐야겠다 싶었다.

나이가 좀 더 들어 내가 엄마의 나이가 되면 또 다른 생각이 들까. 그간 받아왔던 엄마의 사랑도 떠오른다. 살림이며 음식이며 얼마나 깔끔하고 정갈하게 해 자식에게 바쳐왔던 분인지도 알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나쁜 딸은, 좋은 딸 노릇을 그만두고 싶어 진다.

그래도 내년 엄마 생일을 핸드폰 달력에 미리 표기를 하며 절대 잊지 말자 다짐을 했다. 마음 한구석엔 서운함과 미안함으로 뒤섞인 내 마음을 달래주려는 또 다른 내 마음이 참 분주히 노력하는 순간이었다.


'엄마, 미안하지만 나도 이제 늙어간다오. 좀 봐주셔.'


나만의 변명이 한참이나 떨어진 엄마의 마음으로 날아가는 중이었다.



사진/영화 '미나리'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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