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잘못도 아닌

by 단팥

퇴근길에 눈송이가 하나 둘 날리기 시작했다. 뭐 얼마나 올까 싶었는데 문득 창밖을 보니 제법 쌓다. 전철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버스에 음을 졸이며 올랐다.


운이 나쁘게도 난 버스를 서서 타야만 했다. 이렇게 막히는 날에, 하필이면 눈까지 오는 날에. 다리가 아프도록 서서 30분이 지났지만 평소 가는 길의 3분의 1도 가지 못한 채 버스는 거북이걸음처럼 느릿느릿 갔다.


버스에 오른 다른 사람들도 이러다 집에 못 가는 건 아닌지 불안해했다. 눈은 점점 더 많이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30여분을 더 가고 어느 승객이 하차 벨을 눌렀다. 하지만 기사님은 정류장을 그냥 지나치시는 게 아닌가. 결국 그 승객이 아저씨에게 가서 더 크게 이야기를 한 후에야 버스는 정류장에 멈췄다.


아마도 버스 기사님은 쏟아지는 눈 속에서 긴장 속에 운전을 하시느라 그 소릴 못 들으신 것 같았다. 나 같아도 그랬을 것 같았다. 사람은 가득 태운 버스가 자칫 미끄러져 사고라도 날까 싶어 얼마나 긴장을 하셨으면.

우리도 일을 하다 보면 예기치 않은 일들을 맞이하게 된다. 때론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천재지변이나 알 수 없는 기계의 결함으로 인해서도. 이날의 숨 막히는 교통체증도 그런 이유였다.


다행히 버스는 평소 20분이면 갈 거리를 1시간을 걸려 내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다. 내가 내리려고 버스카드를 가방에서 꺼내느라 손잡이를 잠시 놓았는데 버스 기사님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손잡이 꼭 잡으세요, 지금 눈 때문에 버스 바닥 미끄러워요!


아저씨의 불호령에 짝 놀란 나는 버스 손잡이를 꼭 잡았다. 그나 화가 나진 않았다. 그곳까지 모쪼록 안전하게 운전하신 아저씨께 고마운 마음이 앞섰다. 러면서 누군가도 혹시나 내가 잘못하지 않은, 그러나 나의 잘못이 되는 일에 조금은 너그럽게 나를 봐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고 따스한 나의 집으로 향했다.



사진/영화 '35 럼 샷'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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