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추운 겨울이었다. 일어나자 핸드폰의 기상 앱을 켜보니 '영하 14도'라는 끔찍한 숫자가 보였다. 한숨을 쉬고는 코트를 입을 수는 없을 것 같아 두툼한 롱 패딩을 입고 나갔다. 버스에 올라앉으니 점점 많아지는 사람들. 두어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검은색 롱 패딩이다. 도로를 거칠게 달리는 버스 안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검은색 옷을 입고 있는 것이 문득 생경하게 다가왔다. '다 같이 장례식장에라도 가는 것일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이거 원. 검정은 애도의 색체다. 장례식에 갈 때 우린 검은색의 옷을 입고 애도를 표한다. 그런데, 요즘 내가 입는 거의 매일의 옷이 검정이다. 나의 일상은 어쩌면 애도가 살얼음처럼 깔린 슬픈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만 같다.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병이 세상을 이렇게나 뒤 흔드는 이 와중에도 정국은 어지럽고 어른에게 학대받아 상처입은 아이들을 보면, 내가 같은 어른이란 사실이 죄스럽기만 하다.그래서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더욱 슬프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화가 고야는 비극적인 전쟁을 겪으며 '검은 그림들'을 그렸다. 1819년 그는 '귀머거리 집'이라고 하는 주택을 구입해 방 두 개의 벽에 14점의 대형 벽화를 그렸는데 이들은 매우 어둡고 기괴했기에 '검은 회화'라고 불린다.
이미지 출처 다음 백과/프란시스코 데 고야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1820-1823, 캔버스에 유채, 143.5x81.4cm
그는 성공한 화가가 되길 꿈꿨지만, 동시에 권력자들에게 시달리는 예술가의 삶을 살았다. 과로에 청력까지 잃은 그가 자신만의 공간에서 창조한 그의 시대는 비관적이고 어두웠다. 나는 오늘 아침, 사람들의 검은색 옷과 나 역시 입고 있는 검은색 옷을 바라보며 지금 시대의 색이 바로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의 색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 무엇일까 떠올린다면, 다름 아님 고야의 검은 그림이라는 생각도. 불행한 시절을 건너 우리가 닿을 곳은 어디일까. 검은 세상이 희망의 빛으로 인해 다시 환해질 수 있을까? 오늘도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바라보며 제발 이 날들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소망을, 깊고 깊은 한숨 끝에 날려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