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서로에게 축복일까?

by 단팥

얼마 전 한 선배의 블로그에서 유명 시인에 대한 씁쓸한 글을 읽었다. 그는 현재 가장 잘 나가는 시인 중의 한 명이지만, 불행하게도 그가 젊은 시절 가르쳤던 제자의 기억엔 나쁜 기억으로 가득했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선배는 그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우린 누군가에게 축복일 수도, 최악일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


한동안 그 말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를 생각하니 아찔했다. 그건 남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오래도록 들었다. 털어서 먼지가 나지 않는 사람 있을까. 타인의 기억 속에 나 또한 좋은 사람일 수도, 최악의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가 가진 여러 가지의 모습이 있다. 여자, 남자, 엄마와 아빠. 친구, 직장 동료와 이웃, 자식과 형제, 연인 혹은 손님과 판매자로까지. 우린 참 많은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리가 가진 가면은 인에게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인 동시에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중요한 기능도 한다.

어느 날 카페에 들러 커피를 사려는데 난데없는 고성이 들려왔다. 음료 픽업대에서 한 50대 아주머니가 자신의 음료가 자신보다 나중에 주문한 사람보다도 늦게 나왔다며 직원들에게 온갖 못된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나에게 주문을 받고 있던 직원은 갑작스러운 일에 당황을 했는지 손을 벌벌 떨며 주문을 받았다. 당사자도 아닌 내가 마음이 다 떨릴 정도로 분위기는 험악했고 상황은 언제 끝이 날지, 아주머니는 계속해서 화를 내고 있었다.


어쨌든 아줌마는 승리했고 직원의 사과도 몇 번이나 받아냈다. 승리에 취한 모습으로 아줌마는 같이 온 남성과 함께 내 주변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한 30분 정도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방금 전까지 화를 내지 않았다면 그녀의 목소리가 그렇게 크리라고는 생각되지 못할 만큼 목소리가 나긋나긋했고, 같이 온 남성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맞장구를 쳐주는 모습은 너무나 평온해 보였다.


그녀가 집에서 가족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나는 좀 궁금했다. 자신의 가족에겐 한없이 자애롭고 따스한 사람일까? 만일 그렇다면 그녀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엄마인 동시에 세상에서 다시는 만나기 싫은 고객임에 틀림없었다.

다른 이들의 가면과 나의 가면을 떠올리며, 나는 나의 가족에게 어떤 사람인지, 친구에겐 또 사회적 위치에선 어떤지를 돌이켜 보게 된다. 내가 타인을 대하는 모든 행동에 오점이 없었을까.
만일 모든 사람이 나를 좋게만 생각한다면 내가 인생을 아주 잘 살았거나 올해의 연기대상 후보에 오를 만큼의 연기력을 가진 사람이거나 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두 날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다. 살아오며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고 또 좋아하는 사람도 더러 보았니까.


나이가 들면서 한 가지 드는 생각은, 더 이상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지 말자고 다짐하는 것이다. 한데 그러기가 참 쉽지 않다. 서로의 이해와 오해는 늘 충돌하고 한 가지 사건에도 참 여러 가지의 의견이 오고 가는 것이 상의 이치니까.

그래서 가끔은 특정할 수 없는 누군가를 위해 조심스러운 위로와 사과를 마음속으로 건네게 된다. 난 참 모자란 사람이었다는 반성과 난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변명을 덧붙이며.



사진/영화 '미스터 스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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