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찬
내면은 중요치 않다, 최대한 허세를 부려야 한다, 한 여자만 만나면 안 된다, 착하고 매너 있게 행동해봐야 소용없다, 안될 것 같으면 접어라, 어떻게든 섹스를 해라 등등. 숱한 실패를 통해 내가 만들어낸 연애에 대한 지침들이다. 이 지침들은 하나 같이 세상에서 통용되는 연애 상식에 반하는 것들이다. 특히 여성들에게 매우 불편하게 들릴 법한 이야기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남자는 여자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입장인데, 오히려 여자들이 싫어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사랑이 뭔지를 규정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욕은 부정적인 의미다. 부모나 배우자에게 욕을 먹거나, 군대 고참이나 후임들에게 욕을 먹거나, 회사 동료들에게 욕을 먹는 건 그가 자식으로서, 고참이나 후임으로서, 동료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욕이 늘 부정적 의미인 건 아니다. ‘극찬’일 때도 있다. 스타크래프트 전 프로게이머 출신 BJ 중에 변현제라는 선수가 있다. 프로토스 유저인데, 실력도 대단하지만 게임을 참 얄밉게 한다. 톱 클래스 수준의 게이머들을 상대로 포톤 캐논 러시나 쉴드 배터리 러시 등 한 수 아래의 상대에게 농락용으로나 쓸 법한 전술을 쓰고, 하이템플러나 리버, 다크템플러를 활용한 견제 플레이로 상대방의 혼을 빼놓는다. 그의 플레이에 당한 상대 선수들은 GG를 치면서 이렇게 소리지른다.
"아, 이 새끼 게임 개같이 하네."
브라질의 축구 선수 네이마르는 현란한 발재간의 소유자다. 그가 상대를 약 올리려는 듯 묘기에 가까운 기술을 선보이면 수비수는 열받아서 몸을 밀치거나 태클을 건다. 그러면 네이마르는 죽겠다는 듯 운동장을 데굴데굴 구른다. 그러면 심판은 수비수에게 옐로카드를 주고, 네이마르에게는 프리킥 기회를 준다. 분명 당하는 상대 입장에선 열 받을 것이다. 브라질 말로 뭐라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속으로 "아, 이 새끼 축구 개같이 하네." 하는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여기서 상대 선수들은 변현제나 네이마르를 보며 욕을 한다. 하지만 여기서 욕은 칭찬이다. 변현제가 스타크래프트를, 네이마르가 축구를 기가 막히게 잘한다는 뜻이다. 그들을 상대하기가 욕 나올 정도로 곤욕스럽다는 뜻이다.
핵심은 관계다. 가족이나 군대 선후임, 회사 동료는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협력하는 관계다. 내가 잘해야 공동의 목표가 이루어지고, 그래야 나도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러니 상대방에게 욕먹을 짓을 하면 안 된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반면 스타크래프트나 축구 경기는 경쟁이다. 내 병력이 줄어들수록 상대의 힘은 강대해지고, 내가 골을 먹힐수록 상대는 승리에 가까워진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다. 그러니 상대방을 불행하게 만들어야 한다. 욕 나올 정도로 말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만약 사랑이 남녀가 힘을 합쳐서 공동의 행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면 남녀는 서로를 배려해야 한다. 상대방에게 욕먹을 짓을 하면 안 된다. 하지만 경쟁이라면, 상대방을 희생시켜서 내 욕망을 충족시키는 행위라면 다르다. 상대방이 나를 욕한다는 건 내가 그만큼 관계에서 이득을 봤다는 뜻이다. 연애를 영리하게 잘했다는 뜻이다.
과거에 내 생각은 전자였다. 어느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중앙선을 넘어 달려오는 트럭으로부터 그녀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지고, 불치병에 걸린 그녀를 위해 내 생명을 내어주는 그런 사랑을 꿈꿨다. 너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기에, 너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고, 아니,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럴 각오가 되어있지 않다면 진실된 사랑이 아니라고 믿었다.
그런데 점점 그게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나는 너를 오랜 시간 동안 그리워했다. 너를 잊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혔고, 글로 남겨서 박제해두기까지 했다. 그런데, 네가 그걸 원했을까? 내가 이러고 다녔던 걸 네가 알면 기뻐할까? 아마 아닐 것이다. 소름 돋는다며 치를 떨었을 것이다. 어쩌면 신고를 했을지도 모른다. 스토커라며. 그런데 난 왜 그랬을까?
결국 나는 네 행복 따위 안중에도 없었던 거다. 내가 너의 행복을 바랐다면 나는 너를 잊었어야 했다. 다시는 네 삶에 개입하려는 작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어야 했다. 나의 존재는 너에게 마이너스였기에. 너에게 난 없느니만 못한 사람이었기에.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가 사랑이라 생각했던 게 너에겐 집착과 광기로밖에는 보이지 않았을 거라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행복해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사랑은 너에게 짐일 뿐이었다는 차가운 진실을 직면하는 것보다 내 사랑은 진짜였다는, 나는 이 속물적인 세상에서 살아가기에 너무 순수하고 고고하고 진실된 인간이었다는 환상 속에 빠져사는 게 그나마 제일 나았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내 행복 밖에는 관심이 없었다.
원래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왜 사람은 잠을 안자면 졸린가? 잠을 자야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사람은 배고픔을 느끼는가? 밥을 먹어야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왜 사람은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하는가? 사랑을 해야 섹스를 하고, 그래야 내 유전자를 후대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사랑의 본질은 번식욕이다.
그리고 번식욕은 지극히 이기적이다. 남자는 최대한 많은 여자와 가벼운 관계를 맺으며 널리 씨를 뿌리길 원한다. 번식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남자가 할 일은 단 하나, 씨를 뿌리는 거다. 일단 뿌리고 나면 임신도, 출산도, 육아도 여자의 몫이다. 남자는 투자한 게 없으니 잃을 것도 없다. 밑져야 본전이다. 그러니 최대한 많이 씨를 뿌려야 한다. 못생긴 여자건, 머리가 나쁜 여자건, 문란한 여자건, 폭력적인 여자건 상관없다. 그냥 다음번에 더 나은 여자를 만나 또 한 번 씨를 뿌리면 된다. 하지만 여자의 입장은 다르다. 여자는 번식을 위해 많은 자원을 투자한다. 그렇기 때문에 잃을 게 많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면, 남자의 경제적, 심리적, 물질적 지원을 충분히 받지 못해 아이를 제대로 키워내지 못한다면 임신과 출산, 육아를 위해 들인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여자는 강하면서도 책임감있고 헌신적인 남자와 장기적으로 안정적 관계를 맺어가길 원한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남녀는 서로를 속인다. 남자는 돈이 많은 척, 강한 척, 매너와 배려심이 있는 척한다. 여자는 화장을 하고 다이어트를 하고 애교를 부려서 어리고 사랑스러운 여자인 척한다. 그렇게 상대를 유혹해서 자기 이득을 취한다. 남자는 여자의 성을, 여자는 남자의 물질을 탐한다. 남자는 달콤한 말로 여자를 유혹해서 침대로 데려가고, 여자는 남자로부터 명품백을 선물받고 근사한 식사를 대접받는다.
사랑이란 결국 그것밖에 안 되는 것이다. 로맨스 영화나 사랑 노래에 나오는 달콤한 문장들은 다 거짓이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세상 뭐든 해줄 수 있을 것처럼 말하지만 그건 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얻어낼 내 행복을 위해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말에 불과하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다. 사랑이라는 관계에 있어서조차 그렇다.
그러니까 이왕에 사랑을 할 거라면 내 이득이라도 확실하게 챙겨야 한다. 여자라면 최대한 돈 많은 남자를 만나서 단물을 쪽쪽 빨아먹어야 하고, 남자라면 쭉쭉빵빵한 여자를 만나서 원없이 따먹어야 한다. 그게 솔직한 것이다.
그러니까 만약 어떤 여자가 된장녀, 김치녀, 속물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면, 남자가 쓰레기, 난봉꾼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면 그건 욕이 아니다. 극찬이다. 욕 나올 정도로 똑똑한 연애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