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없는 남자, 연애 예능에 나가다.
그러던 어느 날 청주에 있는 친구네 집에 놀러가게 되었다. 피자 한 판을 시켜놓고 넷플릭스 영화를 보려고 하는데 친구가 갑자기 오래전에 했던 TV 프로그램 ‘짝’을 보자고 했다.
나는 그런 걸 왜 보냐고 물었다. 내 기억 속에 ‘짝’은 재미없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배우나 아이돌들처럼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개그맨처럼 웃긴 사람들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BBC 다큐멘터리나 헐리웃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영상미가 끝내주는 것도 아닌데 이런 프로그램을 뭐하러 보나 싶었다.
그런데 그날 밤, 나는 앉은 자리에서 6시간 동안 짝을 정주행해버렸다. 정말이지 미친 듯이 재밌었다. 짝이 방송되던 당시, 나는 20대 초반이었다. 짝에 나오던 결혼 적령기 남녀들과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그래서 그들의 생각과 행동에 공감할 수 없었다. 직업을 공개하기 전까지는 아무 존재감도 없던 남자가 전문직 혹은 어느 기업 오너라는 걸 밝히는 순간 의자왕이 되어 여자들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것도, 자기를 선택하지 않을 게 뻔한 여자를 위해 이벤트를 하고,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눈물을 보이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남자들은 바보 같고 여자들은 속물 같았다. 그런데 화면에 나온 그들과 같은 나이대가 되자 신기하게도 모든 게 이해가 갔다. 누가 누구에게 호감이 있는지, 이 관계의 향방이 어떻게 흘러갈지가 다 보였다. 그래서 재미있었다. 모태솔로, 돌싱, 조카사노바, 농촌칠간지, 국민형아 등 개성있는 출연자들이 나오니 더 재미있었다.
그런데 마냥 재미있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모습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저들처럼 바보짓을 하지 않았다. 나한테 마음이 없어 보이는 여자에게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고, 시간과 돈을 쓰지 않았고, 정성을 기울이지 않았다. 축구로 치자면 0 대 0이다. 나는 아무런 손해도 보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누군가에게 백만 원을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하면 백만 원을 날린 게 되듯, 나를 사랑하지 않는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마음을 표현하는 건 바보짓일까? 차라리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게 나은 걸까? 회계 장부가 마이너스 백만 원인 것보다는 0원인 게 나은 것처럼?
그건 아니었다. 사실 나는 사랑을 하고 싶었다. 누군가를 갈망하고, 그 마음이 외면당해서 좌절하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이 이어져 행복해하기도 하고, 행복이 계속되면 권태로워하기도 하고, 그러다 서로 상처를 주고 받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고, 그리워하기도 하고. 사랑이라는 한 단어에 함축되어 있는 그 모든 감정들을 오롯이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못했다. 중학생 때 좋아했던 친구에게는 그건 네가 오해한 거라고, 나는 너와 남자 친구 사이를 갈라놓으려 한 게 아니었다고 말해주고 싶었고, 고등학생 때 좋아했던 친구에게는 어떻게 내 뒷통수를 칠 수가 있냐고 화라도 내고 싶었고, 사회 초년생 때 만난 사람에게는 술 기운을 빌어서라도 전하지 못한 말들을 전하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안했다.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서 그랬다. 그리고 전하지 못한 마음은 미련이 되었다. 그렇게 질질 끌다보니 나이만 먹었다.
그럴수록 나는 점점 비겁해졌다. 누군가로 인해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아무것도, 누구도 소중히 여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세상에 정의란 없다. 사람들은 그저 자기한테 이익이 되는 걸 적당히 예쁜 말로 포장해서 정의라고 부르고 있을 뿐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그런 건 애초에 없었다. 로맨스 영화나 대중 가요에 나오는 절절한 사랑은 남자들을 호구로 만들기 위해 대중 미디어가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꿈을 깨야 한다. 철저히 이기적으로 굴어야 한다. 그래야 손해보지 않을 수 있다. 세상 모든 건 수요와 공급의 논리로 굴러가게 마련이다. 사람의 마음도 너무 많이 표현하면 질려하고, 막 대하면 오히려 끌려 한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물론 그게 맞을 수도 있다. 어느 잘난 놈들은 그런 방식으로 연애를 한다. 번호를 따건, 술집이나 나이트 클럽에서 헌팅을 하건, 동호회에 들어가건, 소개팅을 받건 어떤 식으로든 연락하는 여자의 수를 늘린다. 여자가 많으면 한 명 한 명에게 연연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 여유있는 남자,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남자처럼 보인다. 그런 모습에 여자들이 끌린다. 마치 돈이 돈을 벌 듯, 여자가 많은 놈들은 점점 여자가 많아진다. 그런 식으로 연애로부터의 자유를 달성한다. 마치 경제적 자유처럼.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누군가는 마음 다칠 것, 손해 볼 것, 웃음거리가 될 것을 감수하고 마음을 표현하고, 누군가는 그 마음의 무게를 알아본다. 그렇게 사랑을 한다.
잘난 놈들이 보기엔 바보 같아 보일 것이다. 조금만 관점을 바꾸면 여러 여자를 만나면서 즐겁게 살 수 있는데 왜 호구가 되길 자처하나 싶을 것이다. 내 생각도 물론 그렇다. 나에게 모든 여자를 유혹할 수 있는 마성의 매력이 있었다면 당연히 나도 그렇게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마음은 그렇게 가벼운 게 아니다. 처음 보는 여자에게 번호를 따는 것도 용기고, 주도권을 잡기 위해 기싸움을 벌이는 것도 용기지만 자기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진실된 마음을 드러내는 것도 큰 용기다. 세상사 다 통달한 척 뒷짐지고 앉아서 남들을 비웃기만 하는 나보다는 훨씬 용기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긴 싫었다. 자신의 나약함을 직면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남 탓을 하고, 세상 탓을 했다.
그런데 저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매 순간의 감정에 충실했다. 사랑, 질투, 원망, 열등감, 좌절, 그밖에 그곳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들. 그중 무엇 하나도 숨기지 않았다. 심지어 수십 대의 카메라와 그 뒤에 있는 수십만 시청자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그렇게 했다. 짝에는 모태솔로도 있었고, 돌싱도 있었지만 그중에 나보다 비겁한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솔로’ 출연 신청 메일을 보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