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없는 남자가 왜 연애프로에 나갔는가

출항

by 김선비

방송에 나가겠다고 하자 부모님이 물었다. 네가 거길 나가서 얻는 게 뭐냐고. 할 말이 없었다. 커플이 될 거라는 기대는 딱히 없었다. 밖에서도 나는 인기 없는 남자였다. 나름 선별한 남자들 사이에서라면 더할 것이다. 오히려 망신만 당할 확률이 높다. 0표를 받고, 혼자 숙소에 남아서 자장면을 먹는 모습이 인터넷에 박제되어 돌아다니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얼굴을 알리려는 것도 아니다. 나는 연예인이 아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도 아니다. 앞으로 그런 일을 할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얼굴이 알려져봐야 딱히 좋을 게 없는 사람이다.


출연료를 많이 받는 것도 아니다. 100만 원 남짓. 크다면 큰 돈이지만 없어도 되는 돈이다. 전 국민 앞에 내 얼굴을 팔고 품평을 당해가면서까지 벌어야 할 돈은 아니다.


결국 무엇도 아니었다. 나는 이 방송에 나가서 얻을 게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나가기로 했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다윈의 진화론에 영감을 준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다윈이 이곳에서 영감을 얻었던 건 이 지역의 특이한 자연환경 때문이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약 1,0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다. 육지 생물이 헤엄을 치거나 통나무 같은 걸 타고 건너오기에도, 새가 날아오기에도 너무나 먼 거리다. 그리고 제도를 이루고 있는 19개의 섬들 역시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섬의 고도나 면적, 기후 등의 요인들 역시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한 섬에서 다른 섬으로 동물들이 이주하기도 어렵다.


이처럼 독특한 자연환경은 이 지역의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처음 갈라파고스 제도에 유입되었을 때는 같은 종이었던 동식물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19개의 서로 다른 섬에 정착하고, 그 섬의 환경에 적응하면서 서로 다른 형태로 진화하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다윈은 핀치새에 관심을 가졌는데 그는 이 섬에서 서로 다른 체격과 부리 모양을 가진 13종류의 핀치새를 발견했다고 한다.


다윈이 진화론의 영감을 얻은 건 이 다양성으로부터였다. 서로 다른 체격과 부리 모양을 가진 13종류의 새들이 알고 보니 모두 핀치새였다면 서로 다른 체격과 피부색, 머리 모양을 가진 흑인과 백인, 황인도 그 근원은 같을 수 있다. 이 논리를 더욱 더 확장해본다면 인간과 강아지 혹은 인간과 새, 심지어는 인간과 바퀴벌레조차도 그 근본은 같을 수 있다. 각각의 종들이 갖고 있는 고유의 체형과 피부색, 식습관, 날개나 털, 등껍질, 날카로운 송곳니 같은 것들은 그저 서로 다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발전시킨 사소한 차이들일 수도 있다. 13가지의 부리를 가진 핀치새들처럼 말이다.



내가 궁금했던 것도 그런 것들이었다. 누구나 사랑을 한다. 사랑을 받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다. 연애를 못 해본 사람은 있어도 사랑을 못 해본 사람은 (아마도)없다. 하지만 정말로 사랑이라는 것에 모든 것을 걸어본 사람은 드물다. 우리에게는 사랑 말고도 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연애를 하는 도중에도 회사에 다녀야 한다. 부모님과의 관계에도 신경 써야 하고, 친구들을 만날 시간도 내야 하며, 개인적인 공부나 취미 활동도 해야 한다. 여러 가지 특징을 가진 생물들이 서로 교배를 하며 그 생물들이 갖고 있던 고유의 색채를 잃어가듯 사랑이라는 감정 역시 우리가 현실에서 해결해야 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과 균형을 잡는 과정에서 그 순수함을 잃어버리게 된다. 우리는 사랑을 하면서도 다음날 출근할 걸 걱정하고, 친구 경조사에 나갈 돈이나 대출 이자 같은 것들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나 역시 그랬다. 사랑을 하고 싶었지만 막상 사랑을 위해 모든 걸 걸지는 못했다. 회사 핑계, 출판 준비 중인 책 핑계, 친구 핑계, 부모님 핑계를 댔다.


그래서 나는 모험을 떠나기로 했다. 회사 일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부모님이나 친구들과의 관계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곳, 사랑이 아니라면 할 것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곳, 새들의 날갯짓으로도, 들짐승의 달음박질로도 닿을 수 없는 갈라파고스 제도처럼 사랑이 아닌 어떤 것으로부터도 철저히 단절된 곳으로 떠나기로 했다. 그런 곳이라면 사랑이라는 감정의 가장 순수한 형태, 원형 그대로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품고, 나는 갈라파고스섬으로 모험을 떠나게 된다.

keyword
이전 01화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