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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은 심심하다

회사 생활 7년차에 느끼는 것들2

by 김선비

나는 지금 두 번째 회사에 다니고 있다. 전 직장에서 5년 동안 영업을 했고, 지금 이 회사에서는 잠깐 영업을 하다 마케팅으로 직무 전환을 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네 번째 회사다. 28살 때 수습기간만 마치고 그만둔 회사가 있었고, 34살, 작년에는 1달 정도 헤드 헌팅 일을 해보려다 그만두었다. 학원 강사로 일했던 경험도 포함한다면 다섯 번째다. 하지만 그냥 두 번째라고 한다. 잦은 이직은 오히려 경력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오래 다닌 거 아니면 그냥 없는 걸로 친다. 여자들한테 연애 몇 번 해봤냐 물어보면 "음... 제대로 사귄 것만 하면.."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이 네 군데의 회사, 그리고 다섯 군데의 직장에서 다 똑같이 들었던 말이 있다. 우리 회사는 소문이 빠르다는 말이다. 첫 회사는 여자가 많은 회사였다. 40명 정도 신입을 뽑았는데 남자가 여섯 명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선배들이 우리 회사는 여자들이 많아서 뒷 말이 많이 돈다, 비밀 얘기 같은 거 함부로 하고 다니면 안 된다는 조언을 했다. 두 번째로 들어간 회사에는 남자가 많았다. 특히 내가 속해 있던 영업부에는 30여 명의 영업 사원들 중 세 명 빼고 다 남자였다. 셋 중에서도 둘은 나갔다. 그런데 거기에서도 똑같은 말을 들었다. 우리 회사는 소문이 빠르니 조심하라는 말이었다.


세 번째도, 네 번째도 그랬다. 젊은 사람이 많은 회사도 다녀봤고, 나이 든 사람이 많은 회사도 다녀봤고, 대기업도 다녀봤고, 중소기업도 다녀봤지만 그 중에서 우리 회사 사람들은 입이 무거우니 마음 놓고 속을 터놓으라는 곳은 하나도 없었다. 다들 우리 회사는 소문이 빠르니 조심하라는 말 뿐이었다. 결국 어딜가나 소문이 빠르다는 말이다.


심심해서인 것 같다. 나는 직장을 6년 다녔다. 이제 7년 차다. 그런데 이 6년은 내가 지내온 어떤 6년보다도 빠르게 지나갔다. 너무 즐거워서 시간이 빨리 간 건 아니다. 오히려 지루해서 빨리 갔다. 어제가 오늘과 같고 내일도 오늘과 같으니 어제와 오늘, 내일의 구분이 없었다.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는데 주말이 다 지나갔고, 제대로 한 것도 없는데 월 매출 마감은 다가왔다. 그걸 반복하다보니 7년 차가 되었다. 과장이 되는 것도, 부장이 되는 것도 금방일 것이다.


그래서 직장인들은 소문을 기다리게 된다. 누가 누구와 자주 붙어다니는 것 같다, 그 쪽 팀장이 그렇게 또라이라더라, 누구 과장이 술 마시고 누구한테 추근대더라, 어느 부서에 누가 금수저라더라, 어떤 여직원이 몸매가 그렇게 좋더라. 진위 여부는 중요치 않다. 그냥 잠깐 재밌으면 되는 거다. 호수와 같이 잔잔하고 무미건조한 일상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켜줄 작은 돌맹이 하나면 족한 거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참 훌륭한 회사원인 것 같다. 일머리도 그닥이고 술도 잘 못 마시고 붙임성도 별로 안 좋지만 방송에도 나갔고, 성형 수술도 했고, 책도 만들었고. 이만큼 소문 거리를 많이 만들어낸 회사원이 몇이나 되겠나. 어쩌면 내가 회사에 다니면서 이룬 가장 큰 공적은 이런 것들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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