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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무원, 함께일 줄 알았던 시작

늦은 나이, 비연고지, 소수직렬 입직

by 공쩌리

하인리히의 법칙. 1:29:300 법칙이라고도 한다.

1건의 중대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29건의 경미한 사고가 있었고,

300건의 잠재적 위험이 존재했다.

즉, 작은 사고나 징후들을 방치하면 결국 큰 사고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오늘은 나의 공직생활 중대사고와 경미한 사고 전, 잠재적 위험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겠다.


# 평균보다 높은 입사 연령, 이것이 내 공직생활에서 맞닥뜨린 첫 번째 위험요소이다.

중소기업에 재직하며 느낀 사회적 시선과 자격지심을 자양분 삼아 늦은 나이에 과감히 사직서를 내고, 2년간 공무원 시험에 올인했다.


공무원 조직엔 보통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입직한 이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들은 연령에 맞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직렬, 입사 연도를 초월한 또래집단을 형성해 삼삼오오 어울려 다녔다. 내 또래는 거의 육아휴직 중이었고, 그나마 남은 사람들은 이미 연차가 높아 나를 동등한 동료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물론 늦은 나이에 입직하여도 대부분 잘 적응한다. 하지만 나에게 '나이'는 아래의 모든 악조건과 맞물려 어느 '무리'에 또 낄 수 없는 또 하나의 장벽이 되었다...


# 비연고지의 닫힌 지역성. 이것이 내 공직생활 고난의 두 번째 위험요소이다.

내가 지원한 A시 시청은 집에서 불과 10km 떨어진 가까운 곳이었지만, 거의 가본 적 없던 낯선 곳이었다. 뚜렷한 랜드마크도 없고, 관광자원은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기업은 거의 전무하고, 대학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신도시는 소규모라 외지인 이주는 크지 않다. 결국 이곳은 외부 인구 유입이 많지 않아 토박이 비율이 높은, 폐쇄적인 분위기의 도시였던 것이다...


지방직 시험엔 ‘해당 지역 3년 이상 거주 또는 현재 거주’라는 조건이 붙어있다.


거주지 조건이 시험의 자격 요건인 이유를 그땐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말할 수 있다.


지방직 공무원은 그 지역 출신이라는 것 자체가 기본값이자 하나의 스펙이며, 그것이 곧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반이었다. 특히 A시처럼 지역색이 강하고, 폐쇄적인 곳에서 더욱 심할 수밖에 없다. 나는 그렇게 또 하나의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입직을 한 것이었다.


# 소수직렬의 '동기 없는' 공직생활. 이것은 내 공직생활 고난의 세 번째 위험요소이다.

나는 소수직렬만 따로 치른 지방직 시험을 치르게 되었고, 때문에 그 해 동기 모임에 끼지 못했다...


입사 동기는 '같은 해'에 들어오면 다 동기지 무슨 '시험' 동기를 따로 나누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생각으로 어떻게든 동기집단에 속해보려 같은 해 입직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반갑게 인사하고 동기라고 칭하며 친근감을 보였지만, 일반행정직에서만 수십 명 선발했던 그들은 이미 '시험 동기'라는 끈끈한 관계를 형성하여 나의 노력에도 그들은 나를 동기로 받아주지 않고 거리를 두었다.


같은 직렬 동기라도 많이 있었으면 좀 나았으련만... 나는 직렬 동기 무리조차 없었다.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전쟁터 같은 직장에서 믿고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동기’라는 사실을.

공무원 조직처럼 체계적인 교육보다 경험과 관행에 의존하는 곳에서, 일을 알음알음 배워나가야 할 때 동기의 존재는 그야말로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뿐만 아니라, 힘들고 지칠 때 아무 말 없이 얼굴만 봐도 위로가 되는, 쉼터 같은 존재 역시 동기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동기’가 없는, 초유의 공직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마치 나 혼자 총알 없는 총을 들고 전쟁터에 선 기분이었다.


늦은 나이 입직,

비연고지의 폐쇄적이고 닫힌 지역성,

소수직렬의 동기 없는 공직생활.


이 세 가지 '잠재적 위험'과

그 후 겪은 수많은 사건, '경미한 사고'들이 쌓여,

결국... 나의 사직서 제출이라는 '중대사고'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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