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워라밸의 불편한 진실
공무원이 되면 일과 삶의 균형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 칼퇴가 무엇이 가요? 눈치야근
우리 팀은 6시가 되어도 아무도 사무실을 떠나지 않는다. 누군가가 슬쩍 10분쯤에 퇴근을 시작하면, 다들 조심스럽게 팀장님께 인사를 하고 하나둘씩 사라진다. 그런데 그날은 20분이 되어도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할 업무는 다 끝났고, 일이 끝났다고 절. 대.로. 독서를 하거나 웹서핑을 할 수도 없는 분위기에서 계속 없는 일을 하는 척 앉아있는 게 너무 괴로웠다. 다른 선배들에게 도와줄 일이 없냐고 물었지만, 다들 가라고 했다.
조심스레 팀장님께 "먼저 퇴근하겠습니다"라고 말했는데, 갑자기 팀장님은 벌떡 일어나 나를 문책했다. 선배들이 퇴근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막내가 먼저 가냐는 것이다. 나는 억울해하며 선배들에게 도와줄 일이 없는지 물어봤고, 먼저 퇴근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고 상황을 해명했지만, 팀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팀워크가 중요한 조직이다. 이기적인 사람은 용서할 수 없다..."
# 추가 근무 패키지
다음은 공무원이 겪는 의무적이고 반복적인 추가 근무 상황들이다. '공무원이면 이 정도는 기본값'이라고 보면 된다.
1. 주말과 휴일근무
이건 본인의 일이 많을 때, 주중에 못 업무 마무리가 덜 됐을 때이다. 하루 4시간까지만 초과근무 수당 지급 인정이지만 그 시간을 훌쩍 넘기고 무료봉사하기도 일수. 초과근무를 할수록 정신은 혼미하고 몸이 힘들다. 최저임금 수준의 수당... 그냥 안 받고 쉬고 싶다...
2. 당직근무
한 달에 몇 번씩 돌아가며 당직 근무도 해야 한다. 아침 9시부터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이어지는 근무였다. 일정이 있을 때 당직이 걸리면, 누군가와 당직을 바꿔야 한다. 연차가 높거나 인맥이 있는 사람들은 일정 조율이 비교적 수월했다. 나는 먼저 배려해 주면 언젠가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 싶어 가능한 한 많이 당직근무를 바꿔줬다. 그러나... 정작 내가 일정이 있을 때, 누군가 나를 위해 근무를 바꿔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3. 축제근무
각 지역에서 열리는 각종 축제들... 지자체가 주관이다. 짧게는 반년에서 일 년 동안 준비하는 지자체도 있다. 시청의 전 부서가 차출된다. 크게는 부스 운영부터 작게는 동원 근무... 축제는 당연히 주말이 끼어있다. 우리 시의 축제는 꼭 내 생일이 있는 즈음에 열린다. 매년 생일에 축제에 동원되는 이런 슬픈...
4. 비상근무
지방직 공무원 한정 '비상근무' 추가근무 중 화룡정점이 아닐까 싶다. 봄가을에는 산불예방 비상근무, 여름에는 폭우 비상근무, 겨울에는 제설 비상근무... 계절별로 준비되어 있다. 전화 오면 무조건 한 시간 이내에 응소해야 한다.
자다가도 비상근무 소집전화에 벌떡 깨서 새벽 한 시든 네시든 당장 출근해 밤새 제설작업을 하고... 또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는 정상근무다. 근육통과 졸음에 제정신이 아니지만, 과장님 팀장님이 조퇴를 안 하신다. 몇몇 MZ직원들이 조퇴한다 말을 꺼냈다가 꾸중을 들었다고 한다. 꼭두새벽에 출근해 잠 한숨 못 자고 조퇴도 없이 정상근무라니.
폭우와 폭설을 즐기던 감성적인 나에게 지방직 공무원 입직 후 각 계절별 날씨의 낭만은 끝나버렸다.
5. 그 외 각종 재난 및 화재 시 동원 등
시군에 각종 재난 사건 발생 시 출동하여 돕는 것이다. 소방서에서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지방직 공무원도 동원된다. 대표적으로 화재 시 소방을 도와 물지게를 이고 분투하는 것 등...
# 연가 신청, 보고인가 허락인가?
이전 직장에서 연차를 쓸 때는 업무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동료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팀장님께 구두로 보고한 후 결재를 요청하면 끝났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연차를 낼 때마다 팀장님 뿐만 아니라 과장님에게까지 보고라는 명목하에 실제는 허락을 받고 사유까지 밝혀야 했다. 이게 정말 필요한 절차일까? 왜 이렇게 구시대적인 방식이 여전히 유지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모든 걸 겪으며 묻게 된다.
전업 수험생으로 2년이라는 시간과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캄캄한 독서실에서 수험서를 붙들고 꿈꿨던 미래,
공무원의 워라밸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