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에서 'Tiger in the night' 연주곡이 흘러나온다. 이 음악은 클래식 FM '세상의 모든 음악'의 시그널이고 내게는 6시를 알려주는 시보다. 평소 6시 직전에 퇴근하는 내가 계속 음악을 듣고 있다는 건 야근을 한다는 의미다. 저녁형 인간인 나는 오전엔 빈둥빈둥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찾아오는 사람들과 수다를 떨다가 오후가 돼서야 일을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야근이 잦은 편인데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많은 일정이 취소되었고 야근을 하면서까지 날짜를 맞춰야 할 일이 별로 없다.
오늘은 오랜만에 야근을 했다. 시그널 음악도 오랜만에 들었고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라는 DJ의 오프닝 멘트도 오랜만에 들었다. 그 말은 이상한 힘을 지녔다. 상투적일 수 있는 그 말이 들을 때마다 매번 사람을 뭉클하게 한다. 음악 때문인지, 저녁 6시의 어스름 때문인지, 아니면 DJ의 단정한 목소리 때문인지 , 이유도 없이 덜컥 위로를 받곤 한다.
ⓒ새해
며칠 전,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불안과 갈등의 늪에 빠져버린 사회초년생 친구가 찾아왔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회사를 나왔는데 자유는 커녕 잠도 오지 않는다고 했다. 얼굴이 반쪽이 되었다. 사람이 몇 달 새 이렇게 변할 수도 있나? 놀라울 지경이었다. 회사를 왜 그렇게 빨리 그만 두었나 물었더니 젊은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이 된 순간, 이렇게 주저 앉으면 안 될것 같았다고, 그러면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을수 없을 것 같았다고.
안전한 자리에 눌러 앉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해보겠다는 그 결심도 이해가 되고 그 뒤를 바짝 따라온 불안도 이해가 됐지만 나는 그 친구를 제대로 위로하지 못했다. 세상을 한참 더 살아 본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그저 괜찮다고 , 세상에 불안하지 않은 선택은 없다고, 이게 아니면 또 바꾸면 된다고 열렬히 설명 했지만 위로가 되지 않을 거란 걸 안다. 더 열심히, 더 멋진 선택을 위해 괴로운 청춘에게 너무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무슨 도움이 될까.
열심히 멋지게 살고 싶지만 그게 어렵고 그게 잘 안 된 하루. 확신 없이, 별 볼일 없이 저물어 버린 이 하루 속에도 수많은 선택과 반복과 노력과 근심이 들어 있다. 멋지게의 내용이 다르고 열심의 방법도 근심의 무게도 각각 다르겠지만 살아있다는 건 누구나, 무언가, 끊임없이 애쓰는 일, 그러니 우리가 어디서 어떤 저녁을 맞더라도 우리는 모두 오늘 하루도 수고한 게 맞다.
위로하고 싶지만 위로해 주지 못한 젊은 친구의 뒷모습이 며칠 째 마음에 얹혀있다. 그러나 그를 감싸고 있는 불안과 갈등과 질문의 시간이 그를 조금씩 더 자기답게 하리라는 걸 믿는다. 그 와중에도 문고판 작은 시집 두 권을 챙겨 들고 온 마음을, 그 친구가 가진 마음의 공간을 믿는다.우리는 평생 선택해야 하고 선택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내가 걸어온 한걸음 한걸음은 모두 내가 선택해 온 거야. 그 선택이 나의 애정이나 의지를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기도 했고 때로는 나의 의사에 반하기도 했었지만 그것은 결국 내 인생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