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너무 무겁게 혹은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나 자신에게 -
“10년 후 마흔 살 즈음엔 표지에 내 이름이 콕 박힌 책 한 권쯤 꼭 낼 거야!”
내가 남편에게 자주 내뱉는 말이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애들한테 손발이 묶인 부엌데기 -왠지 귀여워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 나를 지칭하는 말이지 주부를 비하하는 의도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지만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은 바로 글을 쓰는 거라고 했습니다.
누구나 마음에 그런 소원 하나쯤 품고 살기 마련이지만 돌아보면 그건 소원이 아니라 허세였고 근거가 없는 자만이었습니다. 마흔 살 즈음엔 진짜 책 한 권을 낼 수 있는 작가가 되려면 지금부터 차곡차곡 글을 써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내가 책을 쓸 만한 근거를 마련하는 일이 먼저였습니다.
육아에 치여, 살림이 바빠, 하루가 이렇게 고단한데, 새롭게 시작한 공부만 해도 머리가 터질 것 같아서,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많으니까...
내가 글을 쓸 수 없는 이유는 한 만 가지쯤 되었습니다. 이런 만 가지 이유로 글 쓸 수 없는 시간들이 쌓여 이제는 세월이라 부를만한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나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세 번 곧
3년의 모유수유로 가슴은 육십 년이 늙어있었습니다. 늙은 가슴만큼이나 쓰고 싶은 열망들도 늙어져 가는구나, 그러니 시간이 흐르는 대로 자연스레
살자고 내 멋대로 내 삶을 제한해주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고,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작은 카페를 열고, 전공을 바꾸어 또 한 번 학생이 되고, 뭍을 떠나 낯선 동네로 삶을 옮겨오는 동안 머릿속에 아무리 많은 생각들이 전두엽을 자극해도 그것이 성실한 손끝으로 기록되지 않으면 곧 날아가 버려 공허한 공상으로 그쳤습니다.
내 마음의 우물에 아무리 깨끗하고 맑은 물방울이 똑똑 떨어져도 생수와 같은 시원한 글로 풀어내지 않으면 그 물은 고여 결국은 썩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을 문장과 문장으로 연결하는 연습-길게 써내려 가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결코 다듬어지지 않는 것이 내가 그토록 ‘하고싶다, 하고싶다’ 가슴속에 외치던 글쓰기였습니다.
브런치 앱을 다운받고도 6년이란 시간 동안 작가신청을 하지 못한 채로, 나 대신 누군가가 나를 녹여주길 바라는 얼음이 되어있었습니다. -집에서 육아를 하다 보면, 꼭 내 시계만 멈추어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가만 지난날의 내 밑바닥을 들여다보니 글쓰기가 대단한 작품을 내어놓아야 하는 것이라는 너무 무거운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것과 사물을 찍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것도 타인의 것과 비교하면 도저히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남의 것과 비교하지 않고 나의 내면을 그윽하게 바라볼 때야 비로소 꽃 피울 수 있는 것이 쓰는 일입니다.
또 어떤 날은 글쓰기를 만만하고 가볍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언제든 내가 마음만 먹으면 펜이 알아서 내 손을 잡고 써 내려갈 것이라는 오만함은 오늘부터 당장 부지런히 글을 쓸 수 없는 큰 장애가 됩니다. 내가 글을 쓰는 행위에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주지 않으니 글쓰기 또한 내게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글을 쓰지 않으면서 그 언젠가는 책을 내겠다던 생각은 마치 지금은 내가 이렇게 놀고 있지만 언젠가 마음만 먹으면 억만금쯤은 쉽게 벌 수 있고 어제도 오늘 밤도 야식을 먹으면서 십 년 뒤에는 정말 건강하고 탄탄한 몸매를 소유할 것이라는 비정상적인 논리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내 삶이 고단해도, 아주 특별한 주제가 아니어도 삶은 문장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 시간을 서성이다 보니 차분하게 정리된 것들이 있습니다. 이제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하루의 성실입니다. 글쓰기는 자기 과시나 자기 연민이 아닙니다. 나의 하루를 소중하게 대하는 일 중에 하나입니다. 손가락 까딱 해서 배달앱을 켜고 시켜먹을 수도 있지만 좀 더 신선한 재료를 골라 장을 봐서 집밥을 해먹고, 어지럽게 널려있는 물건들을 정리하고 집을 청소하는 하루의 일들과 똑같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나의 어제를 돌아보고 나의 오늘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아주 조금 더 성실하고 어여쁜 내일을 살기 위한 간절한 몸부림이 바로 글쓰기입니다.
내 안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하는 손끝의 노동 ,
내 안의 우물에 맑고 깨끗한 물만 길어다가 나처럼 목마른 누군가에게 먹이는 일 ,
누군가의 아내로 세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면서도 나만의 빛깔과 숨결을 잃지 않는 일 ,
내가 여전히 나의 맛을 내면서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
이런 것들이 내가 찾은 ‘쓴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이제 나는 막 글을 쓰기 시작했고, 내면을 둥둥 떠다니는 단어들을 모아서 문장으로 만드는 서툰 날갯짓을 하고 있습니다. 브런치 작가가 된 지 일주일, 첫 발행한 나의 글을 삼만 명이라는 사람들이 조회하는 근사한 일이 생겼습니다. 생기지도 않았을 일을 생기도록 창조하는 행위는 얼음에서 “땡!”을 하는 순간 발생합니다. 어릴 적 놀이에서는 타인이 해주는 일이지만 인생에서의 땡은 그 누군가가 대신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 내가 시작하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남편에게 무작정 십 년 뒤에는 책을 쓰겠다고 나쁜 습관처럼 내뱉던 그 말도 바꾸었습니다. “나 이제 뭐라도 매일 써 볼 거야.”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드라마 눈이 부시게 김혜자 배우님의 나레이션. 배우가 수상할 때 한번 더 인용해 화제가 되었던 대사입니다. 좋아하는 문장이라 품고서는 종종 꺼내봅니다.
글쓰기를 너무 무겁게 혹은 너무 가볍게 여겼던 지난날의 나와 그대들에게 -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쓰는 일을 멈추지 마세요. 오늘을 사세요. 오늘을 쓰세요. 눈이 부신 나만의 문장들을 만나세요. 바로 지금이 당신과 내가 글을 써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