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소금 Oct 08. 2021

파도, 그 태초의 소리를 듣던 날

내가 아이를 낳고 제주에 사는 이유 1



제주에 오기 전에는 바다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볼 때마다 바다는 더 아름다웠다. 오묘하고 신비한 그 깊이와 넓이.. 매일 다른 색과 온도. 그저 가만히 서있는데도 파도가 기어코 밀려와서 살을 쓸고 내려가는 그 촉감은 그야말로 힐링의 터치였다.

파도 (波濤): 바다에 이는 물결



어느 날 우리 부부가 사랑하는 동쪽으로 나섰다. 노을 지는 방파제에 18개월 아기를 안고 멍하니 앉아있는데 아이가 너무도 평온하게 투정 하나 없이 그대로 새근새근 잠들어버렸다.


가만히 들어보니 이 물의 소리, 파도의 소리는 우리 모두가 엄마의 자궁 안에서 들었던 꽤 웅장하고도 역동적인 그 생명의 소리들과 같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 엄마의 자궁 안은 ‘분명 평온하고 고요할 이라는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크고 다양한 소리들이 나는 곳이라고 한다. 자궁 안에는 쉼이 없이 들리는 엄마의 심장박동 소리, 꼬르륵거리는 엄마의  운동 소리 같은 것들이 여과 없이 들린다. 우리 생각보다 훨씬  아기에겐 시끄러운 환경, 거칠고 거센소리가 나는 , 엄마의 자궁 -


내가 정성스레 토닥여주지 않아도 적당한 바람이

아기의 이마를 쓸어주고 두 뺨을 어루만져 주었다. 굳이 온습도계로 확인해보지 않아도 적당한 습도와  잠자기 딱 좋은 서늘한 공기였다.


파도치는 소리에 집중하니 어느순간 그곳은 어떤

이물질이나 파도 소리 외에 다른 소음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청정의 진공 공간으로 느껴졌다. 눈이 맑아지고 머리는 깨끗하게 비워졌다.




아기를 안고 있는 내 가슴 안에 답답한 기운과 울적한 마음들이 그 파도소리에 다 휩쓸려가는 듯했다. 쉼 없이 또다시 밀려오는 그다음 파도에는 사랑이, 그다음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충만한 에너지가, 좋은 감정들이 거세고 힘 있게 일렁이며 떠밀려왔다.

그날 나는 답을 얻었다. 어느 정도 아이들이 자랄 때까지 육아는 자연에서 하는 거라 믿고, 확신했다.

자연은 부모인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고 공을 들여도 할 수 없는 것들을 우리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을 거란 본능적인 직감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사는 동안 최선 다해 자연으로 나서리라 다짐했다. 집 앞 마트에 가는 동안에도 눈을 돌리면 바다와 숲과 오름이 있는 이곳에서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처음, 바다에서 나던 비릿하고 역한 냄새가 이제는 개운하게 느껴질 만큼 바다에 가면 위로를 받는다. 신이 내게 주신 최고의 육아메이트 파도,

아, 제주도 너는 내 운명!


이전 07화 바로 지금이 글을 써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