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이를 낳고 제주에 사는 이유 1
제주에 오기 전에는 바다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볼 때마다 바다는 더 아름다웠다. 오묘하고 신비한 그 깊이와 넓이.. 매일 다른 색과 온도. 그저 가만히 서있는데도 파도가 기어코 밀려와서 살을 쓸고 내려가는 그 촉감은 그야말로 힐링의 터치였다.
어느 날 우리 부부가 사랑하는 동쪽으로 나섰다. 노을 지는 방파제에 18개월 아기를 안고 멍하니 앉아있는데 아이가 너무도 평온하게 투정 하나 없이 그대로 새근새근 잠들어버렸다.
가만히 들어보니 이 물의 소리, 파도의 소리는 우리 모두가 엄마의 자궁 안에서 들었던 꽤 웅장하고도 역동적인 그 생명의 소리들과 같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 엄마의 자궁 안은 ‘분명 평온하고 고요할 것’이라는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꽤 크고 다양한 소리들이 나는 곳이라고 한다. 자궁 안에는 쉼이 없이 들리는 엄마의 심장박동 소리, 꼬르륵거리는 엄마의 장 운동 소리 같은 것들이 여과 없이 들린다.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아기에겐 시끄러운 환경, 거칠고 거센소리가 나는 곳, 엄마의 자궁 -
내가 정성스레 토닥여주지 않아도 적당한 바람이
아기의 이마를 쓸어주고 두 뺨을 어루만져 주었다. 굳이 온습도계로 확인해보지 않아도 적당한 습도와 잠자기 딱 좋은 서늘한 공기였다.
파도치는 소리에 집중하니 어느순간 그곳은 어떤
이물질이나 파도 소리 외에 다른 소음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청정의 진공 공간으로 느껴졌다. 눈이 맑아지고 머리는 깨끗하게 비워졌다.
아기를 안고 있는 내 가슴 안에 답답한 기운과 울적한 마음들이 그 파도소리에 다 휩쓸려가는 듯했다. 쉼 없이 또다시 밀려오는 그다음 파도에는 사랑이, 그다음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충만한 에너지가, 좋은 감정들이 거세고 힘 있게 일렁이며 떠밀려왔다.
그날 나는 답을 얻었다. 어느 정도 아이들이 자랄 때까지 육아는 자연에서 하는 거라 믿고, 확신했다.
자연은 부모인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고 공을 들여도 할 수 없는 것들을 우리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을 거란 본능적인 직감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사는 동안 최선 다해 자연으로 나서리라 다짐했다. 집 앞 마트에 가는 동안에도 눈을 돌리면 바다와 숲과 오름이 있는 이곳에서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처음, 바다에서 나던 비릿하고 역한 냄새가 이제는 개운하게 느껴질 만큼 바다에 가면 위로를 받는다. 신이 내게 주신 최고의 육아메이트 파도,
아, 제주도 너는 내 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