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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소금 Oct 16. 2021

시월의 추모 식(喰)

아빠의 임종, 생의 마지막 순간에 할 말.


54년생 아빠는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그 옛날부터 수석을 모으는 콜렉터였고 고향이 그리운 날 밤이면 당신의 블로그에 어린시절의 강 마을을 주제로 소설을 썼다. 아빠는 유난히 비 오는 날을 좋아하셨다. 한 밤중에라도 시원하게 비가 쏟아지면 창문을 열고 빗방울을 느껴보라 하셨다.


오늘 내가 사는 제주에도 비가 온다. 그리움일까, 더 사랑하지 못한 후회일까, 용서하지 못한 미움일까, 나 자신도 모를 여러가지 색깔의 눈물이 흐른다.


“엄마 왜 우러?(울어?)” 네 살 아들이 묻는다.

인간의 죽음이 지닌 비가역적인 의미를 아직 이성으로 이해하지 못할 아들이 작은 손으로 내 뺨의 눈물을 쓸어준다.




어렸을 때는 정장을 입고 출근하는 우리 아빠가 이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남자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아빠가 돌아 가신지 3주년이 되는 날. 이 마지막 가을비를 맞으면서 정장에 코트를 입은 우리 아빠가 저기 어딘가 서글프고도 낯선 길 끝에서 나타날 것만 같다.


아빠를 다시 만난다면 아빠는 어떤 말을 해주실까, 아빠는 지금 내게 무슨 말이 가장 하고 싶을까...

못다한 그 말들을 듣고싶다. 누군가는 가을을 타고 누군가는 가을을 누리는 계절, 시월(十月)에는 본능적으로 아빠가 그립다.



                        임종에 대한 착각


나는 사람이 죽기 전에는 꼭 입을 열어 말을 할 거라 생각했다. 누구나 어떻게든 마지막 아주 중요한 말, 남겨질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 등을 꼭 남기고 떠날거라 굳게 믿었다. 아들 딸들이 곁에서 손발을 잡고 운명(殞命)을 지켜보며 유언을 듣는 장면이 내가 아는 임종의 광경이었다. 그렇지만 그건 영화에서나 그런 거였지 현실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사람의 임종은 대게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고요한 것이어서 ‘언어’라는 소리가 새어 나올 에너지 조차도 없는, 생명이라고는 단 한 점도 없는 것이었다(내가 경험한 아빠의 임종은 그랬다). 그래서 그 침묵의 순간이 바로 인간의 마지막 순간, 삶이 아닌 죽음이 되는 것인가 보다. 아빠는 그렇게 허무하고 조용하게 이생(this life)을 떠났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에 나를 가장 괴롭힌 장면은 눈도 뜨지 못하고, 입도 열지 못하는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무기력하고 무감각한, 스스로의 의지나 에너지라고는 없는-마치 산 사람 같지 않고, 인간답지 않은-그런 아빠의 가엾은 모습이 떠올라 한참 동안 괴로웠다.


‘저 꼭 다문 입술을 열어 생의 마지막 순간 아빠는 우리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가버린 아빠가 불쌍했다. 한동안 아빠의 마지막 간절한 메시지는 과연 무엇이었을지 애타게 궁금했다.




    그리워하고 생각하며, 나만의 추모 식(喰)


오전 내내 나도 죽은 사람처럼 누워있다가 일어나 부엌으로 간다. 오늘은 우울해서 요리를 한다. 슬프니까 요리를 한다.


닭을 깨끗하게 손질하고 감자를 깎는다. 담담하게 가스불을 켠다. 엄마가 보내주신 게장도 꺼내 정갈하게 담는다. 아빠가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엄마의 간장게장과 닭도리탕(닭볶음탕). 아빠가 좋아했던 음식으로 아빠를 기억한다. 이렇게나마 아빠의 짧지만 고단했을 삶을 기념하고 위로한다.


내가 만든 음식을 아빠 대신 내 옆에 앉은 남편이 너무나도 맛있게 먹는다. 아빠의 얼굴을 닮은 나의 세 아이들도 간장에 조려준 닭고기를 먹는다. 내가 말을 하지않고 웃질않으니 오늘 하루는 조용한 식사를 한다.


조용히 밥알을 씹다 보니 울적한 내 감정보다는 남편의 얼굴이 보인다. 우리 아이들의 모습도 사랑스럽다. 내가 또 잊을 뻔한 것들이 다시 떠올랐다. 사람은 그 고귀한 생의 마지막 순간 단 한마디도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단 사실. 아빠의 유언, 마지막 말을 듣진 못했지만 아빠의 마지막은 내게 강렬한 메시지를 남겼다. ‘그래, 사람이 한번 태어나고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인데 내가 언제 어떻게 이 땅을 떠날지는 아무도 모르는거니까, 죽음을 앞에 두고서 해야 할 말, 꼭 하고 싶은 말들을 너무 아껴두지 말고 살아있을 때 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구나.’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언어는 산 자만이 누리는 최고의 축복, 생(生)의 상징이다. 그러니 살아있는 동안, 숨이 붙어 호흡하는 동안 분명한 나의 메시지를 전할 것. 소리 낼 기운조차 없어 힘 없이 죽음으로 가는 마지막 순간이 와도 나의 영혼이 너무 당황스럽지않게. 지난 삶을 후회하지 않을 만큼만, 사는 동안 딱 그만큼만 끝없이 사랑을 말할 것. 늘 고맙다고, 소중하다고, 행복하다고 언어로 표현할 것.


살아있기에 침묵을 깨고 우리 아이들에게 말한다.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워. 오늘도 사랑해”


아빠가 오늘 침묵을 깨고 나를 만나러 온다면 아마도 이렇게 말해주실까 -

‘딸아, 이젠 울지 말고 너의 삶을 살아. 사랑하는 이들에게 끝없는 사랑을 말하며 살아가렴.’

아빠가 내게 남겨준 무언의 부탁을 품고 다시 나의 삶을 꼭 끌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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