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소금 Oct 23. 2021

‘축복’은 프랑스어 ‘상처 입다’와 어원이 같다.

내 삶을 사랑하기로 한 순간

‘축복’은 프랑스어 ‘상처 입다’와 어원이 같다.
축복을 셀 때 상처를 빼고 세지 말아야 한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 류시화-


아기를 낳던 날

아기가 밀고 내려오는 느낌, 아 이젠 정말 다 왔구나 이번에 힘주면 머리가 나오겠구나 하는 모든 감각을 생생히 느끼며 출산했다. 3키로 작은생명이 얼마나 사력을 다해 좁은 산도를 통과했을까 -

배와 허리가 뒤틀리고 진통이 강해질 때마다 피하고만 싶은 죽음의 고통이 온몸을 난도질하는 듯했지만 동시에  한쪽 끝에서는 ‘이제  달을 꼬박 기다린  아기를  만난다 벅찬 희망이 차오르기도 했다. 아기가 나오고 온몸을 쑤셔대고 흔들던 고통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뜨끈한 미역국을 떠먹으며 생각했다.

이게 우리가 운명처럼 살아가야하는 ‘ 아프고, 기쁜 일까?




엄마와 아기, 우리는 그렇게 고통의 끝에서 만나고 탄생했다. 앞으로 또 이렇게 망가질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육체와 정신 모두가 상처 입고 고통을 겪었다. 그런데도 그 누구도 이걸 저주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를 향해서 쯧쯧쯧 참 안됐다. 안타깝다 -라고 하지 않고 다들 축하한다고 말했다.


그 순간은 죽을 만큼 아프고 괴로웠는데 고통이라 말하지 않고 축복이라고 한다. 돌아보니 내 삶에 이런 비슷한 것들이 꽤 많았구나.

10 동안 살았던 우리 ,  방에 빨간딱지가 붙었을 

나보다 더 소중해진 우리 아기 심장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고 하던 날

분명 이제는 행복하게 잘 살 일만 남았다고 말했던 아빠가 췌장암 말기 선고를 받던 날

첫 학교 입학을 손꼽아 기다리며 설레여 잠못이루던 딸이 교실로 올라가는 계단이 슬프고 무서워 자꾸만

눈물이 떨어진다고 고백하던 날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이 적당하게 섞여있는

나의 희로애락 인생을 사랑한다. 처음부터 ‘ 있는 인생을 바란  없으니까, 꽃길만 걷게  달라는 그런 기도는 해본  없으니까.

들꽃처럼 잡초처럼 더 강하고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삶의 여러가지 바람과 비를 맞아들이기로 했다.

진통은 피하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겪는 것이다.

겪고 나면 또 생명이, 환희가 터져 나온다.

적당히 고단하고 때로는 애처롭게 버텼던 젊은 날들을, 오늘을 축복으로 센다. 삶의 모든 상처들이 축복이 되어 돌아와주길 꿈꾸면서.


이전 10화 시월의 추모 식(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