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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소금 Oct 14. 2021

바로 지금이 글을 써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글쓰기를 너무 무겁게 혹은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나 자신에게 -



“10년 후 마흔 살 즈음엔 표지에 내 이름이 콕 박힌 책 한 권쯤 꼭 낼 거야!”


내가 남편에게 자주 내뱉는 말이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애들한테 손발이 묶인 부엌데기 -왠지 귀여워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 나를 지칭하는 말이지 주부를 비하하는 의도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지만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은 바로 글을 쓰는 거라고 했습니다.


누구나 마음에 그런 소원 하나쯤 품고 살기 마련이지만 돌아보면 그건 소원이 아니라 허세였고 근거가 없는 자만이었습니다. 마흔 살 즈음엔 진짜 책 한 권을 낼 수 있는 작가가 되려면 지금부터 차곡차곡 글을 써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내가 책을 쓸 만한 근거를 마련하는 일이 먼저였습니다.



육아에 치여, 살림이 바빠, 하루가 이렇게 고단한데, 새롭게 시작한 공부만 해도 머리가 터질 것 같아서,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많으니까...



내가 글을 쓸 수 없는 이유는 한 만 가지쯤 되었습니다. 이런 만 가지 이유로 글 쓸 수 없는 시간들이 쌓여 이제는 세월이라 부를만한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나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세 번 곧

3년의 모유수유로 가슴은 육십 년이 늙어있었습니다. 늙은 가슴만큼이나 쓰고 싶은 열망들도 늙어져 가는구나, 그러니 시간이 흐르는 대로 자연스레

살자고 내 멋대로 내 삶을 제한해주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고,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작은 카페를 열고, 전공을 바꾸어 또 한 번 학생이 되고, 뭍을 떠나 낯선 동네로 삶을 옮겨오는 동안 머릿속에 아무리 많은 생각들이 전두엽을 자극해도 그것이 성실한 손끝으로 기록되지 않으면 곧 날아가 버려 공허한 공상으로 그쳤습니다.

내 마음의 우물에 아무리 깨끗하고 맑은 물방울이 똑똑 떨어져도 생수와 같은 시원한 글로 풀어내지 않으면 그 물은 고여 결국은 썩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을 문장과 문장으로 연결하는 연습-길게 써내려 가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결코 다듬어지지 않는 것이 내가 그토록 ‘하고싶다, 하고싶다’ 가슴속에 외치던 글쓰기였습니다.


브런치 앱을 다운받고도 6년이란 시간 동안 작가신청을 하지 못한 채로, 나 대신 누군가가 나를 녹여주길 바라는 얼음이 되어있었습니다. -집에서 육아를 하다 보면, 꼭 내 시계만 멈추어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가만 지난날의 내 밑바닥을 들여다보니 글쓰기가 대단한 작품을 내어놓아야 하는 것이라는 너무 무거운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것과 사물을 찍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것도 타인의 것과 비교하면 도저히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남의 것과 비교하지 않고 나의 내면을 그윽하게 바라볼 때야 비로소 꽃 피울 수 있는 것이 쓰는 일입니다.


또 어떤 날은 글쓰기를 만만하고 가볍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언제든 내가 마음만 먹으면 펜이 알아서 내 손을 잡고 써 내려갈 것이라는 오만함은 오늘부터 당장 부지런히 글을 쓸 수 없는 큰 장애가 됩니다. 내가 글을 쓰는 행위에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주지 않으니 글쓰기 또한 내게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글을 쓰지 않으면서 그 언젠가는 책을 내겠다던 생각은 마치 지금은 내가 이렇게 놀고 있지만 언젠가 마음만 먹으면 억만금쯤은 쉽게 벌 수 있고 어제도 오늘 밤도 야식을 먹으면서 십 년 뒤에는 정말 건강하고 탄탄한 몸매를 소유할 것이라는 비정상적인 논리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내 삶이 고단해도, 아주 특별한 주제가 아니어도 삶은 문장이 되어야 했습니다.


 시간을 서성이다 보니 차분하게 정리된 것들이 있습니다. 이제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하루의 성실입니다. 글쓰기는 자기 과시나 자기 연민이 아닙니다. 나의 하루를 소중하게 대하는  중에 하나입니다. 손가락 까딱 해서 배달앱을 켜고 시켜먹을 수도 있지만 좀 더 신선한 재료를 골라 장을 봐서 집밥을 해먹고, 어지럽게 널려있는 물건들을 정리하고 집을 청소하는 하루의 일들과 똑같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나의 어제를 돌아보고 나의 오늘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아주 조금  성실하고 어여쁜 내일을 살기 위한 간절한 몸부림 바로 글쓰기입니다.



내 안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하는 손끝의 노동 ,

내 안의 우물에 맑고 깨끗한 물만 길어다가 나처럼 목마른 누군가에게 먹이는 일 ,

누군가의 아내로 세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면서도 나만의 빛깔과 숨결을 잃지 않는 일 ,

내가 여전히 나의 맛을 내면서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

이런 것들이 내가 찾은 ‘쓴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이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고, 내면을 둥둥 떠다니는 단어들을 모아서 문장으로 만드는 서툰 날갯짓을 하고 있습니다. 브런치 작가가   일주일,  발행한 나의 글을 삼만 명이라는 사람들이 조회하는 근사한 일이 생겼습니다. 생기지도 않았을 일을 생기도록 창조하는 행위는 얼음에서 “!” 하는 순간 발생합니다. 어릴  놀이에서는 타인이 해주는 일이지만 인생에서의 땡은  누군가가 대신해줄  있는 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 내가 시작하는 임을 배웠습니다.


남편에게 무작정 십 년 뒤에는 책을 쓰겠다고 나쁜 습관처럼 내뱉던 그 말도 바꾸었습니다. “나 이제 뭐라도 매일 써 볼 거야.”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였을 그대들에게.”

드라마 눈이 부시게 김혜자 배우님의 나레이션. 배우가 수상할  한번  인용해 화제가 되었던 대사입니다. 좋아하는 문장이라 품고서는 종종 꺼내봅니다.



글쓰기를 너무 무겁게 혹은 너무 가볍게 여겼던  지난날의 나와 그대들에게 -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쓰는 일을 멈추지 마세요. 오늘을 사세요. 오늘을 쓰세요. 눈이 부신 나만의 문장들을 만나세요. 바로 지금이 당신과 내가 글을 써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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