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퇴 후 배달 야식 끊기
양념은 처갓집, 더 느끼한 게 당길 때는 슈퍼슈프림, 흰쌀밥에 치밥 할 때는 교촌. 바삭함이 필요할 때는 고추바사삭. 나는 진짜 내가 치킨을 정말 엄청나게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일주일에 세 번. 꾹 참아서 두 번 정도는 꼭 치킨을 시켜먹었다. 치킨은 또 육퇴 하고 밤에 먹어야 제 맛이다.
‘채식.. 자연식.. 다 좋은데 난 치킨 없이는 안될 거 같은데?’ 약간 울적해질 만큼 치킨 없는 내 삶은 자신 없었다.
다음 날 얼굴도 속도 퉁퉁 부어서 나 자신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더 많이 짜증을 내고 있었다. 야식을 먹고 잔 다음 날은 꼭 더 기분이 가라앉았다(분명 그런 느낌을 받았다). 내가 왜 자꾸 습관처럼 나쁜 선택을 반복하나, 치킨집에 전화를 줄여보자, 고작 치킨 한 마리로 수고로웠던 나의하루를 보상받으려 하지말자 다짐했다. 그러고보니 치킨을 시켜먹지 않은지 꽤 오래된 것 같다. 지난 세 달 이상 약 100일 동안 치킨 배달을 시키지 않았다. 지금도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그렇지만 깨달았다. 나는 생각보다 치킨을 안 좋아하는구나... 좋다고 착각하고 그렇게 믿었구나. 기름지고 바삭한 그 맛이 생각보다 내 몸이 막 원하는 맛은 아니었구나. 치킨보다 구운 두부를 곁들인 버섯 샐러드가 더 당기고 맛있는 요즘이다.
사람은 바뀔 수 있고 또 원래의 나를 찾을 수 있다. 시킬까/말까 에서 -말까의 선택이 차곡차곡 쌓이면 충분히 더 괜찮은 생활, 좋은 기분이 유지된다. 생각보다 피나는 노력이 아니라 (전혀 아님-) 그냥 아주 잠깐의, 찰나의 선택일 뿐이다. ‘나는 이 개운한 기분을 잃지 않겠다! 다시 또 더부룩하고 기름진 밤을 선택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