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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정원 May 30. 2023

여름 정원을 향한 벌크업

단독주택 살아보니 #18

동네에 오색의 장미가 터져나오는 5월이 되었다. 가끔 집에 가는 빠른 길 대신 장미가 많은 길로 빙 돌아서 장미를 감상하며 간다. 아름다운 장미의 자태에 근심 걱정이 절로 치료되곤 한다. 이사오기 전에 즐거봤던 정원 유튜브는 항상 부드러운 음악소리가 흐르고 아름답고 풍성한 꽃들이 비친 뒤 알프스 소녀 같은 앞치마를 두르고 정원 일을 하는 그녀들의 모습이 나온다. 영상을 보며 나도 땅만 있으면, 열심히 식물을 구해서 심기만 하면 쉽게 따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랑스러운 나의 정원 땅에 여러가지 식물을 심어 봤지만 나의 정원의 식물들은 어째 키가 크지도 풍성하지도 않았고, 정원이라기 보다는 그냥 잡초 품은 벌거벗은 땅 같기도 했다. 정원은 공짜가 아니었다. 


아름다운 정원에는 끊임 없는 관리와 노동이 숨어있었다. 마을 산책을 하다보면 이제 주인이 정원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 눈에 보인다. 식물들이 단정하고 잡초가 없이 깔끔하면 관리가 잘 되는구나, 식물들이 중구난방으로 자라나고 잡초가 더 크게 자라 있으면 주인이 신경을 안쓰는구나한다. 녹음이 지고 만물이 소생하는 여름에는 몇 일 안 봐주면 티 날 정도로 특히 더 바쁜 것 같다. 다가오는 올해의 여름 정원을 이루기 위해 몇가지 정원 습관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먼저 매일 물을 줬다. 날이 더워지고 식물들이 물 부족에 허덕이고 있었다. 내가 목 마르면 물 마시지만 식물 목마른 것은 비 오니까 괜찮다고 모른척하고 물은 가끔 생각날 때만 줬고, 물주는 시스템도 많이 허술했다. 정원 첫 해인 작년에는 호스가 1m도 안되어서 정원의 구석 구석 물을 뿌릴 수가 없었다. 집 건물 뒷 화단은 극도의 물도 없고 모래 흙의건조한 환경에 준공 때 심어놓은 회양목이 반 정도 죽었다. 물 주기는 몸이 힘들진 않지만 시간과 비례한 작업이다. 우리 집 정원은 30평 정도인데, 간단하게 뿌려도 최소 20분이고 충분히 하나하나 적시려면 1시간 동안 호스를 들고 서 있어야 할 수도 있다. 게다가 화분과 달리 노지는 땅이 평평해서 세게 쏘면 물이 그냥 낮은 곳으로 흘러 내려가버린다. 


그런데 어느 폭우가 이어지던 날, 나는 그 끝없는 비를 맞으며 정원의 식물들이 생명력을 더해가고 텃밭 식물들의 사이즈가 두 배로 뻥튀기되는 모습을 보았다. 과연 식물들이 충분한 물은 생명이자 기쁨이었다. 날이 무더운 요즘은 얼마만큼의 물이 충분한 물인지 체감한 나는 물 주기 시간을 대폭 늘려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올해는 20m 호스릴을 마련했다. 긴 호스와 다양한 물 쏘는 방식으로 1년 동안 물을 따로 주지 않아 회양목도 죽어나갔던 뒷 화단까지도 물을 줄 수 있게 됐다. 바쁘고 피곤한 날에는 물을 좋아하는 오이만이라도, 물을 좋아하는 꽃 수국만이라도 물을 주면서 의리를 지켰다.


 낮에는 출근을 해야 하고, 또 해가 있을 때라 잎이 타버리므로 아침 일찍 또는 퇴근 후 물을 준다. 나는 저혈압이라 아침이 힘든 사람인데 자연의 기운을 빌어 며칠간 아침을 열었다. 식물에 물을 주며, 물을 조용히 받아마시는 식물들에게 오늘 하루 열심히 자라라며 긍정적인 마음의 말을 나눌 수 있고, 또 퇴근 후 물을 주며 하루의 구질함을 씻어내고 식물의 변화를 보는 기쁨이 있었다. 항상 그곳에서 말없이 아름다운 그들이 뿜는 에너지가 아침에도 저녁에도 초록으로 나를 위로하는 듯하다. 매일 찾아가서 들여다보면 잡초도 한번씩 뽑게 되고, 작은 변화도 알게 된다.  물 주는 것은 결국 관심이었다. 

물조리개의 진화
뒷화단의 지피식물 3총사

 두 번째로 주기적으로 식물을 심어 보았다. 2년 차 정원 땅에는 아직도 많은 빈칸이 있다. 빈칸을 채우지 않으면 내가 원하지 않는 잡초들이 무수히 자라난다. 인터넷에 다양한 식물과 식물 정보가 있지만 정답이 없었다. 내가 가진 환경에서는, 나라는 사람에게서는 항상 다른 결과가 나왔다. 직접 해보고 경험해 보는 것 말고는 믿을 것이 없었다. 화원이라는 곳에 다녀본 적도 없고 같이 갈 사람도 없어서 망설이다가 과감히 혼자 걸음을 해봤다. 어떤 식물이 보기도 좋고 알아서 잘 크는 유망주일지 고민해 봤다. 저렴하고 죽어도 마음이 덜 아플 것 같은 일년생 식물 포트를 골랐다. 식물 쇼핑은 마음껏 골라도 가격이 저렴해서 기분전환에도 딱이었다.


 실내에서도 식물을 키웠다. 인터넷으로 씨앗을 사서 실내에서 씨를 뿌려서 모종을 만들었다. 더 크게 키우고 싶거나, 더 이상 키우고 싶지 않으면 마당으로 보냈다.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여 무관심한 시간을 갖는 것인데, 요즘 같은 무더운 시기에는 대부분의 식물은 밖에서 적응 과정을 거친 뒤 무한 성장을 했다. 작년 가을에 실내 에서 키우다 노지에 정식한 램스이어는 거의 100배의 자구를 달고 몰라보게 퍼지고 있고, 델피늄 또한 꽃대를 올리며 위로 쑥쑥 자라고 있다. 바질은 작년에 잘 되어서 올해도 50개 이상 씨를 뿌려서 밭을 만들어볼 셈이다. 실내에서 여리여리 했던 한련화는 마당에서 자리를 잡더니 어마어마하게 성장해서 꽃을 뽑아내고 있다. 

 

모종의 환골탈태
황금사철, 국화 흙꽂이의 변화


 태양이 높게 솟아오르며 뭘 심어도 잘 자라는 여름 성수기가 다가온다. 몇 주간의 여름 정원 습관 두 가지를 통해 정원도 변화하고 나도 변화하고 있다. 유튜브 속 그녀들도 아마 부지런히 움직여서 그런 아름다운 정원을 카메라 속에 담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움직여야 여름, 가을에 아름다운 정원의 꽃 잔치가 온다고 생각하면 더워도 한번 더 밖으로 나가서 물을 주고 식물을 심어야 한다. 오늘 내일의 근시안으로 살던 나에게 정원이란 한달 뒤, 두달 뒤를 내다보게 만들었다. 정원에 지금 당장은 없다. 적어도 두세달은 먼저 움직여야 하는 게 정원이다. 화려한 여름 정원을 꿈꾸며 우리 모두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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