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대형마트 지점에서 영업관리 업무를 하고 있는데, 사실 이 직무로 입사한 것은 아니다. 타 직무를 지원해 채용되었으나, 인사 정책상 현장 근무를 반드시 1년 이상 해야 한다. 처음에는 이해 못한 것도 사실. 그러나 업무를 하면 할수록 느끼게 된다. 대형마트 직원이라면 어떤 업무를 하던지 현장의 이해도는 필수라는 것. 매장의 진열, 창고 상황, 업체 사우들과 영업담당들을 직접 겪어보지 않고 어떻게 다른 업무를 할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이렇게 직접 경험하며 열심히 현장 업무를 하면서도, 문득문득 발령을 기다리게 된다. 도대체 발령이 뭐라고?
마트 조끼를 입고, 계산대 지원을 나가기도 하고, 진열 업무를 하는 것은 사실 처음에만 어렵다. 낯선 환경에서 예상치 못한 업무를 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러나 딱 한 달이다. 한 달만 하다 보면 그다지 어렵지도, 타인이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 내 업무에 자부심을 갖게 된다. 정장 차림의 영업담당이 자주 찾아오지만 그들은 나에게 끊임없이 업무를 제안할 뿐, 결국 결정의 주체는 내가 된다. 내가 주도적으로 매장을 꾸려나가는 것이 재미있고 보람차다. 그러나 재밌는 일만 하는 직장이 있으랴. 당연히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 힘든 일들은 동반된다. 강성 고객을 상대하는 일, 육체적인 노동, 주말 출근 등을 하며 업무에 지칠 때도 많다.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 해야 하는 것인가 생각이 든다.
일을 하며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들어온 직무를 경험해보고도 싶고, 본사에서 더 넓은 시야로 업무를 해보고 싶은 열망도 있다. 고달픈 현재를, 업무를 하며 힘든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발령을 기다린다. 발령이 나면 현재 힘든 일은 저 멀리 날려버리고,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만 같다. 어찌 보면 발령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 같은 것이다. 지금을 버티면 더 나은 미래가 있을 거란 희망. 현재 업무는 나에게 딱 맞는 업무로 나아가기 위한 성장통 같은 일이란 생각. 그래서 강성 고객을 만나도, 마트 조끼가 지겨워져도, 1주일마다 매장을 바꾸는 것이 힘들어도 참는다. 희망이 있는 사람들은 버틸 수 있다.
그러나, 막상 발령이 나면 그 희망이 사라져 버린다. 발령 후 일상이 달라질 것만 같았지만, 실상 다를 것은 없었다. 오히려 업무 범위가 늘어나 부담감이 더 크기도, 업무 강도가 더 강한 부서에 배치받기도 한다. 정신적으로 더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미 발령이 난 사람들은 지금의 힘듦을 견뎌낼 무언가가 없다. 옆 팀의 비슷한 상황을 보며 더 이상의 발령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래서 아주 신기하게도, 매장에서 수년을 열심히 근무했던 직원이 본사에 발령을 받은 후 몇 달 안에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우리는 발령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었다. 발령이라는 "희망"을 버팀목으로 삼았던 것이다. 희망이 없는 사람들은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면 너무 끔찍한 일이다. 어쩌면 수년, 수십 년을 일할 수도 있는 직장에서 희망이 없다니! 너무나 무서운 말 아닌가. 그래서 직장을 단순히 돈을 버는 곳으로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나 또한 동료와 업무에 꽤나 애정을 갖고 있으며, 내가 입사한 직무에 관심을 꾸준하게 갖으려 노력한다. 단순히 현재를 탈피하기 위한 발령이 아닌, 내가 관심 있는 업무를 위한 발령을 꿈꾼다. 그리고 발령이 나더라도, 그곳에서 또 다른 희망을 품을 거다. 그 희망이 다시 발령이더라도, 혹은 단순하고도 사소한 업무적 부분이라도 꼭 가질 거다. 현재를 버티는 힘이 되도록, 지치지 않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