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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능력을 제한하는 심리, 감정과 사고방식의 장벽

by 하트온 Jun 27. 2021

심리적 장벽


웬만한 영어 글을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을 만큼 어휘와 문장 패턴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쌓아왔다고 자신하는 편이다. 특히, 생활환경이 미국인만큼, 각종 영어 책과 영어 기사 글은 생활 속에서 수시로 접하고, 많은 관용적 표현들이 생활의 일부처럼 익숙해졌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영어의 언어적 요소들을 철저히 마스터한 후에도,  영어가 원어민처럼 입에서 저절로 술술 흘러나오지는 않는다. 어떤 심리적 불안과 장벽 같은 것이 있는 느낌, 끊임없이 방해를 받고 있는 느낌이 있다. 실수 가능성에 대한 불안 같은 것이 있다. 생각해 보면, 이것은 진짜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다. 사실은 주어진 상황에 대한 사고방식 차이, 그것이 만드는 감정 차이를 드러낼까 봐 두려운 것이다. 옆에 있는 사람들과 비슷해지고자 하는, 보편적 기준에 젖어들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는 실로 엄청난 것이다. 그만큼 주변 사람들과 다른 독특한 스타일의 언어를 구사하는 일에 당당하기가 힘들다. 함께 있는 10명이 특정 지역 사투리를 말하는데, 나 혼자 다른 지역 사투리를 말할 때의 부담감을 상상해 보라. 거기서 100배 정도 부담감이 더 커진 상황이 원어민들과의 대화에 끼어들어야 하는 일일 것이다. 자신이 구사하는 영어 표현에 대한 자격지심과 혐오감을 이기고 대화에 당당히 참여하기까지 넘어야 하는 심리적 장벽은 무척이나 높다.


자기 확신과 자신감을 회복하고 심리적 장벽을 넘어 낸 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큰 장벽들이 있다. 오늘 글에서는 대표적인 장벽 두 가지, 감정의 장벽과 사고의 장벽에 대해 이야기 하겠다.



감정의 장벽


여기서 감정의 장벽이란, 영어에 녹여 담긴 - 역사와 문화를 기반으로한 - 원어민의 보편적 정서를 외국인의 입장에서 속속들이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stony, stonily 라는 영어 형용사와 부사를 예로 들어 보자. 말 그대로 돌 같고 바위 같다는 의미다. 이 의미가 한국인에게는 뭔가 듬직하고 강하고 단단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영어권 원어민들에게 바위 같이, 돌 같이는 차갑고 단호한 느낌이다. 그래서 한국인은 바위 같이 라는 표현을 강한 남성의 자태나 근육을 묘사하는데 쓰는 경향이 있다면, 영어권에서는 사람의 차갑고 단호한 말투나 냉랭한 태도같은 것을 묘사하는 데 쓴다. 또 다른 예로, 영어의 cute 라는 단어는 한국어의 '귀여운'과 비슷한 뉘앙스를 가지고 있지만, 남성이 매력적일 때 가벼운 칭찬의 표현으로도 쓸 수 있다. 하지만 한국 문화권 안에서 자란 남성이라면 영어권 원어민 여성이 자신에게 cute 하다고 말해 줄 때, 자신을 향해 호감을 표현하는 것임을 모르고, 뭔가 어린아이처럼 느껴진다는 뜻일 거라고 오해하기 쉽다.



사고의 장벽


언어의 배움을 완성시키기 힘든 또 다른 높다란 장벽 중 하나는, 언어를 이루는데 깊이 관여하는 사고 문화의 차이다. 다시 말해, 그들의 보편적 문화와 나 사이에 높다란 사고의 장벽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이 장벽은 내가 구사하는 영어가, 원어민이 자연스럽게 느낄 보편적 사고 문화를 담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기 어렵게 만든다. 


이것은 바로 어린이와 어른이 영어를 배우는 속도를 다르게 만드는 주된 요인이기도 하다. 아이들에겐 사고의 장벽이 거의 없거나, 있더라도 충분히 말랑해서 허물고 다시 새로운 사고 체계를 세우는 것이 쉽지만, 어른들의 사고는 굳게 다져져 있어, 새로운 사고 문화의 흡수를 어렵게 한다. 모국 언어문화와 버무려져 스스로를 형성해 온 굳은 사고방식은 자신의 소중한 일부로서 분명 긍정적인 역할도 하지만, 동시에 영어가 술술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막는 주범인 것도 사실이다.


이 사고 장벽의 모습을 분명히 보기 위해서는, 영어의 기반을 이루는 보편적 사고 문화와 내가 한국 문화권 안에서 자라면서 습득한 나의 사고문화 차이를 분명히 깨닫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우 평등주의,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몇 십년 더 앞서 들어와 뿌리내린 문화, 기독교 문화의 오랜 영향, 말로 감정 표현을 많이 하는 경향, 어린아이들까지도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다 말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 어른 공경이 한국보다 약하고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청년들에게 더 너그러운 문화,... 가 있는 반면, 한국은 수직(계급)주의, 집단주의와 유교사상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페미니즘이 어느 정도는 들어왔지만 생활 구석구석 가부장주의가 아직 상당히 남아 있는 문화, 불교 문화의 영향, 감정 표현을 많이 하지 않고, 의견 주장을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문화, 보다 어린 사람이 보다 나이 든 사람에게 공손한 언어를 사용하고, 노인을 공경할 것이 강조되는 문화다. 


문화적 거리가 서로 상당히 먼 만큼, 사고의 장벽도 크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영어 배우기에 도전할 필요가 있다.



감정과 관념이 언어에 미치는 영향


스탠퍼드 대학 언어 인지학 교수이자 언어 상대성 이론을 주창하는 인지 과학자인 레라 보로딧츠키 교수는 지역 문화의 보편적 감정과 관념이 언어에 미치는 영향을 주장하기 위해, 독일어와 스페인어에 존재하는 “여성/남성 명사 (Grammatical Gender)” 개념을 예로 들어 설명한 적이 있다. 그녀는 해와 달 대한 남성 여성 개념이 반대인 스페인어와 독일어의 예를 들었는데, 독일어에서는 해를 “여성”으로 달을 “남성”으로 보는 반면, 스페인어에서는 해를 “남성”, 달을 “여성”으로 칭한다고 한다. 보로딧츠키 교수는 이 사실에 대해 해와 달에 대해 느끼는 두 문화의 감정의 차이라고 설명하였다.  또한, “다리(“Bridge)”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독일어는 다리를 “여성 명사”로, 스페인어는 “남성 명사”로 취급한다고 한다. 스페인 사람들이 다리를 떠올리면, 단단하고 강한 느낌을 떠올리는 반면, 독일 사람들이 다리를 떠올리면 아름답고 우아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관념의 차이를 의미하는 예라고 교수는 설명하였다.



내 영어를 당당히 말하자


내가 그 문화 속에서 태어나 자라지 않는 한, 해당 나라의 보편적 감정과 사고 문화까지 섭렵하여 영어로 표현해 내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 않을까. 내가 원어민과 같아지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기 같은 무모한 일이 아닐까. 


목표를 원어민처럼 생각하고 말하기로 잡기보다, 내 영어에 당당해지는 쪽, 나의- 한국적 문화 관념과 보편적 감정을 기반으로 가진 사람으로서 - 독특함이 영어를, 그 속에 담긴 문화를 더 확장시키고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자부심을 가지는 쪽으로 노력의 방향을 조금 틀어보면 어떨까. 나는 이미 한국어를 잘하는데, 영어까지 이 정도 하고 있으니 정말 대단하다고 스스로를 격려해 주면서 나아가면 어떨까.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그들의 사고와 감정을 이해하려 노력도 해야겠지만, 그와 동시에 나의 사고와 감정 표현 방식도 존중받아야 할 무엇이라고 당당해졌으면 좋겠다. 내가 존중하는 만큼, 나도 존중을 받아 내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그들로부터 배우고 닮아가고 싶은 부분이 있는 것처럼, 그들도 나에게서 배우고 닮을 만한 가치들을 내가 가지고 있음을 믿었으면 좋겠다. 내가 무척이나 귀하고 아름다운 생각을 들려줄 수 있는 사람임을 굳게 믿으며, 내 영어를 당당히 말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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