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는 아픔을 극복했다 3
쇼펜하우어가 말해주는 행복해지는 비결
불쾌한 일을 무시하고 과소평가하는 것은 행복을 위해 훌륭한 처세법이다.
행복을 위해서는 타인의 판단을 중시하는 명예욕과 일종의 허영심을 버릴 필요가 있다.
힘들고 괴로울 때 최상의 위안은 자기보다 더욱 고통받는 존재를 바라보는 일이다.
쇼펜하우어는 말년에 불교를 접하고 행복을 위한 삶의 지혜를 전파하는데 힘을 썼고 많은 말을 남겼다. 위에 나열한 것의 그가 한 수 많은 말들의 지극히 일부다. 나는 그의 몇 마디에서 그가 깨달은 행복의 원리들을 발견한다.
타인의 생각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말고 무시하라는 것 (타인의 기준에 너무 큰 힘을 실어주지 말 것).
최대한 불쾌한 일들은 작은 일로 치부하고 망각하려고 노력하라는 것 (과거 기억에 얽매이지 말 것).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항상 생각하라는 것 (나만 불행한 피해자가 아니라는 것).
쇼펜하우어 식의 행복을 도모하는 비결이 누군가에게는 마음에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 쇼펜 하우어는 여성을 비하하는 말도 많이 남겼고, 세상이 지옥이라는 둥, 우리 자신도 끝없는 탐욕으로 온갖 나쁜 일을 저지르는 악마라는 둥 너무 염세적이고 부정적인 말도 많이 남겨서 지나치게 비관적인 인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성장배경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가 평생을 스스로 성장하고 행복해지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깨닫게 될 수밖에 없다.
쇼펜하우어의 어린 시절
쇼펜하우어는 1788년 폴란드에서 성공한 무역상 아버지와 유명 작가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형편적으로는 매우 부유하고 안정된 환경이었지만, 내향성이 강했던 쇼펜하우어는 부모님께 충분한 인정과 사랑을 받을 수 없어 고통스러웠던 것 같다. 자신의 사업을 믿고 물려줄 활달하고 대담한 성향의 아들을 간절히 바랬던 아버지는 내내 쇼펜하우어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고, 자신의 뛰어난 작가적 재능에 도취되어, 화려한 사교 활동에 치중하며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던 어머니는 쇼펜하우어에게 넌 안된다는 식의 부정적인 메시지만 주고 필요한 관심을 주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쇼펜하우어가 17세에 아버지가 자살로 추정되는 건물 낙하 사고를 당했을 때, 그는 아버지의 죽음의 책임을 어머니에게 묻고 원망하였다.
가장 예민한 시기에 아버지의 자살과, 어머니와의 최악의 관계에 처한 쇼펜하우어가 정신적으로 얼마나 절망적인 힘든 시간을 헤쳐가야 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자신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평생 듣고 자란 사람의 내면의 결핍감은 또 얼마나 컸을까. 나폴레옹이 독일을 침공하는 전쟁으로 인한 시대적 혼란과 트라우마까지 겹쳐, 그는 상대를 의심하는 성향이 심했고 피해망상증에도 시달렸다고 전해진다.
그는 처음부터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젊은 시절 그에게서 나온 생각들은 정말 염세적이기 짝이 없었고,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 깃든 여성관은 정말 요즘 사람들이 참고 들어줄 수 없는 지경으로 여성을 비하하고 있다.
그는 세계가 끝없는 고통으로 가득한 허상이라고 규정했으며, 인간의 자연적 욕구는 나쁜 짓만 욕망하는 끔찍한 것이기에 그 욕구를 최소화해서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스스로의 삶과 세상을 위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이런 생각을 실천하며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금욕적인 삶을 살면서, 흰색 푸들 강아지에게만 정을 주고 아끼며 여생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아주 잠깐, 어머니가 운영하던 살롱에 드나들던 괴테만이 쇼펜하우어의 지성과 재능을 어릴 때부터 알아보고 그를 제자로 삼아 잠시 교류한 적이 있다고 한다.
쇼펜하우어는 헤겔과 같은 시기에 베를린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며, 의지로 세상을 파악하자는 이론을 펼치고,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라는 그의 대표작을 출간하기도 했다. 하지만 변증법으로 세상을 파악해 가자는 이성 철학이 유행하던 헤겔의 시대였던지라, 쇼펜하우어의 사상도 그의 책도 당대에 세간의 이목을 끌지 못해, 안 그래도 결핍감과 거절감에 고통받는 쇼펜하우어의 마음에 헤겔에 대한 반감은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쇼펜하우어는 평생을 두고 헤겔을 미워했으며, 일부러 자신의 강의시간을 헤겔과 같은 시간에 배정하는 식으로 시기심을 드러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학생들은 모두 헤겔의 강의실로 몰려갔고, 쇼펜하우어의 마음엔 더욱 큰 실망과 좌절의 상처만 남았을 것 같다.
그는 헤겔을 저주하며 자신이 기르는 개에게 '헤겔'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에게 개는 사랑하는 동반자 이면서, 미워하는 상대에 대한 화풀이 상대도 되는 이중적 역할을 하는 존재였던 것 같다.
부모에게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인정받지 못했던 내면의 결핍을 헤겔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자극했을까. 그는 평생 얼마나 그 익숙한 열등감에 시달렸을까. 그것이 부르는 큰 감정들을 사람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는 의심 많은 자신을 다루기가 얼마나 힘에 부쳤을까. 쇼펜하우어를 생각하면서 내 안에 안타까운 슬픔이 가득 고이는 것을 느낀다.
왜 사람들은 쇼펜하우어를 그토록 사랑했을까
쇼펜하우어는 말년에 이르러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고, 자신의 당대보다 후세에 더욱 많이 존경을 받았다. 그는 니체와 같은 철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쳤지만, 프로이드를 통해 현대 심리학에도 큰 영향을 남겼으며, 토마스 만과 헤르만 헤세,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베케트, 마르셀 프루스트, 에밀 졸라, 프란츠 카프카,... 와 같은 문호들의 존경도 받았다. 톨스토이는 그에 대해,
나는 쇼펜하우어가 인간들 중 가장 위대한 천재라고 생각한다.
고까지 표현한 바 있다. 쇼펜하우어는 괴테와 함께 문어체 독일어를 개혁하여 현대 독일 문학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뿐만 아니라 그의 영향을 크게 받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통해 현대 과학에 까지 발자국을 남겼다고도 평가할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예술에 대한 이해도 남달랐다. 그는 인간 세상이라는 생지옥에서 잠시나마 해방감을 맛볼 수 있는 일이 예술이라고 말했다. 예술에 몰입하면 내 안의 욕망 탐욕이 사라지고 '무아지경'에 이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예술의 무관심성, 무개념성, 무목적성이 예술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던 칸트와 상통하는 개념으로 보이기도 한다.
다만, 칸트와의 차이는, 칸트는 음악을 좋게 보지 않았던 반면, 쇼펜하우어는 음악에 대해 많은 가능성을 가진 내면적 예술로 높이 평가했으며, 아버지에게 선물 받았던 플루트를 늘 곁에 가까이 두고 직접 연주를 할 정도로, 음악과 가까운 삶을 살았다고 한다. 음악회에도 많이 다녔다는 걸로 전해진다.
쇼펜하우어의 삶을 보면서, 어린 시절 햇볕이 모자란 환경 속에서 앙상하게 말라비틀어져 죽어가는 듯했던 나무가, 어느새 바로 서서 거대하게 성장하고 대대손손 많은 열매를 맺는 자신과 세상 모두에게 유익한 나무로 성장해 간 것을 본다. 그의 불행이 컸던 만큼 그의 놀라운 성장이, 스스로 행복의 지혜를 찾아 간 평생의 여정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것이 아닐까. 어린 시절 자아상이 비틀린 고통이 컸던 만큼, 무너진 자신을 다시 세우고 이야기를 다시 써 나가고 싶은 심리적 욕구가 크지 않았을까. 그것이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이 되고 작가적 재능이 되어 '인간에 대한 한층 깊은 이해'를 후세에 남기고 모두가 영웅인 그에게 감사하며 그를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닐까.
그는 불교를 접하면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무시할 것인가, 무엇을 취하고 버릴 것인가 '버림의 미덕과 지혜'를 체득했던 것 같다. 그리하여 그의 오랜 인정에 대한 욕구, 명예욕 안에 점철된 타인의 생각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불행의 근원, 너무 오래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질질 끄는 고통의 근원, 나만 불행한 존재라고 자꾸 피해자의 자리에 앉는 악순환의 근원을 꿰뚫어 본 것 같다. 자신이 너무 힘을 실어 주고 있었던 모든 의미 없는 욕망과 사고 습관을 마음에서 죄다 덜어내 버리고, 그때부터 그의 앞에 행복의 길이 열리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뜻하지 않은 어려운 환경이 빚어간, 나 자신의 결핍 가득한 내면과 솔직하게 마주하고, 포기하지 않고 의지를 가지고 성장하고 행복을 찾아가다 보면, 이렇게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고, 행복을 찾아낼 수 있고, 후세의 많은 사람을 도울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산증인 쇼펜하우어 앞에서 우리 모두는 어려운 환경도 견디고 극복하고 헤쳐나갈 힘을 얻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평생 원하던 인정도 명예도 원하던 시기에 얻지 못하고, 남들 다 가진 평범한 행복, 단란한 가정을 누리지도 못했지만, 그는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매일 하나하나 쌓아갔다. 그의 인생에 하루아침에 얻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자신이 의지 - 욕망의 의지가 아닌 순수한 의지 - 를 가지고 절제하며 쌓아 올린 것이다. 아무도 응원해 주지 않아도, 그는 자신의 내면을 돌보며 최선을 다 했다. 그러니 의지로 세상을 헤쳐간다는 것은 쇼펜하우어의 세계에선 진리인 것이다. 끝없이 결핍의 삶을 극복해 나가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나는 그러한 쇼펜하우어의 의지의 진리와, 단순한 삶 속에서 하나하나 버리며 행복을 찾아갔던 그의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여정이 무척 마음에 든다.
대문 사진 출처: Pixabay (by CDD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