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미작가 Apr 21. 2022

6년 만에 하얀 꽃이 피어난 스파트필름

태교일기 [31w3d] 딱풀이에게 보내는 1번째 편지 (D-50)

딱풀아~

엄마 아빠 결혼 선물로 할아버지가 사주셨던 녹색 식물 중에는 '스파트필름'이라는 화분도 있었어.

실내에서도 키우기 쉬운 식물로 유명해서 가드닝 초보인 엄마도 잘 키울 수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자신만만하게 시작한 식물과의 동거 생활은 곧 위기에 봉착했고, 기대와 달리 우리 곁에 온 스파트필름은 점점 생기를 잃어갔어.

마르고 누렇게 변한 잎들을 하나씩 떼어내길 반복하다 보니 결국 남은 잎이 별로 없어서 작은 화분이 너무 크게 느껴질 정도였어. 대체 누가 스마트필름을 키우기 쉬운 식물로 분류했는지 원망스럽기까지 했어.

어느 날 도서관에 다녀오다 들린 부동산에서 우리 집에 있는 아이와 달리 건강한 초록 잎을 뽐내는 스파트필름을 보게 되었어. 감탄하며 부러워하는 엄마에게 부동산 사장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어.

"어머 새댁~ 스파트필름은 물만 많이 주면 되는데, 수경재배도 가능한 식물이라 키우기 쉬워요"

사실 엄마는 그때 다니던 회사를 잠시 쉬고 있었어. 이유는..

딱풀이가 건강하게 엄마 아빠에게 오기 전까지 엄마는 많은 생명을 제대로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보내야 했어. 심장소리도 제대로 들어보지 못하고 작별을 해야 할 때도 있었어.

마치 제대로 잎을 피워내지 못하고 애처롭게 시들어버린 스파트필름의 잎들처럼 말이야.

산부인과에 다니며 시험관 시술을 준비하는 것 외에 특별히 할 일이 없었던 엄마는 사장님의 조언대로 화분에 열심히 물을 주고 살피기 시작했어. 식물 영양제도 사다 꽂아주고, 바람도 쐬게 해주고, 초보 가드너로써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거지.

시간이 흘러 더 이상 생명을 피워내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뿌리에서는 옅은 초록빛의 새로운 줄기가 올라왔어. 그렇게 자라난 줄기에는 잎이 달리기 시작했고.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처럼 예쁜 수형은 아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살아난 그들의 굳건한 생명력에 엄마는 감탄했어.


하지만 부동산에 있던 그 녀석처럼 하얗고 예쁜 꽃은 그 후로도 계속 보지 못했어.

2016년에 할아버지가 선물해 주신 덕분에 우리의 반려 식물이 된 스파트필름은 그렇게 한 번도 꽃을 피우지 못했고, 엄마 아빠는 이 식물이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조차 까맣게 잊고 지냈어.

그런데 딱풀이를 기다리는 2022년 올봄 어느 날, 이제는 무성해진 초록 잎 사이로 하얀 꽃이 피어났어. 이 반가운 소식을 전하니 아빠는 원래 꽃이 피는 식물이었냐며 깜짝 놀라지 뭐야.

딱풀아~ 스파트필름의 꽃말이 뭔 줄 아니?
스파트필름의 꽃말은 '세심한 사랑'이라고 해.

어쩌면 엄마 아빠는 이제야 준비가 되었나 봐. 하얗고 여린 꽃망울을 지켜내고 아껴줄 준비, 그리고 우리 딱풀이를 맞이하고 사랑할 준비.

딱풀아~
엄마 아빠에게 와줘서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