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와트, 무너지는 것들과 남는 것들

앙코르와트의 새벽에서 배운 파괴와 재시작의 감각

by 쏘헤니

도마뱀과의 사투를 벌이다 한국에서는 듣지 못했던 닭 우는 소리에 이불로 귀를 틀어막다 눈을 번쩍뜬다. 일출을 보려고 마음을 먹은지라 지난 밤 꽤 빨리 잠들어서 닭 우는 소리가 그리 짜증나지 않는 아침이었다.

여전히 바퀴벌레가 죽어있는지 실눈으로 살짝 욕실 문을 열어보고 아무것도 없음에 이내 안심하고 씻기를 시작한다. 모자와 팔토시 다리를 가릴 수 있는 랩을 두르고 미리 연락했던 툭툭이 오토바이를 타고 깜깜한 밤 앙코르와트로 떠났다.


해가 뜨기 전이라 그런지 꽤나 쌀쌀한 날씨에 좀 더 따뜻하게 입고 올걸이란 생각과 함께 양 팔을 엑스자로 꼬은 채 열심히 손바닥으로 팔뚝을 문질러댔다.


캄보디아는 사계절이 따로 없이 항상 여름만 존재하는 나라이다. 5월부터 11월까지 우기, 12월부터 4월까지 건기로 분류가 되는데 한참 더운 4월의 경우 앙코르와트 문 앞에 엠뷸런스들이대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굳이 이 더운 건기 막바지 4월에 일출을 보러 온 이유는 여기서는 4월 둘째주가 새해를 맞이하는 설날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캄보디아는 농경사회로서 농업이 주업이 이루는데 4월 둘째주 쯤 되면 비를 내리게 해달라는 의미에서 기우제를 지내게 된다.


"쫄쯔남" - 새로운 해에 들어간다 라고 해서 태국의 쏭크랑과 같이 물축제를 시작하게 된다. 이것은 단순 물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 아니라 하루 빨리 비가 내렸으면 하는 캄보디아 국민의 염원을 담은 것이다. 특히 이 기간에는 캄보디아 전국 각지에서 성지순례를 한다고 여기 모이게 되니 더운 날씨와 다르게 참 의미가 있는 날이기도 하였다.


해 뜨기 전 앙코르와트는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연못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하늘이 조금씩 옅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사원의 실루엣은 아직 까맣게 잠겨있고, 하늘은 보랏빛과 푸른빛 사이 어딘가에서 서서히 주황빛을 끌어 올리고 있었다.

사진으로만 수없이 봤던 그 장면을 이제는 내가 직접 보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아서, 손에 쥔 휴대폰은 잠시 내려놓는다.


생각해보면, 이 순간을 보기 위해 나는 꽤 많은 것을 감수하고 있었다.

도마뱀과 바퀴벌레와 싸우던 밤, 낯선 외국에서 혼자 눈을 뜨던 새벽, 깜깜한 도로를 덜컹거리며 달려온 툭툭이, 그리고 해가 떠오르기만을 조용히 바라보는 이 시간까지.

비가 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나 역시도 이곳에 와서 뭔가가 조금은 나아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농경사회에서 비를 기다린다는 것은 그저 날씨 운이 좋기를 바라는 수준을 넘어서, 한 해의 생사가 걸린 문제다. 4월의 이 축제는 단지 서로에게 물을 뿌리며 장난치는 날이 아니라, 올해도 무사히 버틸 수 있기를 함께 빌어주는 날이라는 걸 알게된 후로는 이 도시의 시간이 조금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국에 있을 때의 나는 늘 '다음'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성장하지 않음은 곧 도태라 여겼으며, 시간적 여유는 날 불안하게 만들었다.

잠시 멈춰 서 있는 시간은 뒤쳐지는 시간이라 생각했고, 기다림은 곧 손해라고 여긴 나날들.


수백 년을 버텨온 돌기둥 아래에 서있으니 내가 그토록 조급해하던 몇개월 몇년이라는 시간이 이상할 만큼 작아보이기도 했다.


앙코르와트는 불교사원으로 알려져 있지만, 곳곳에는 여전히 힌두 신화의 흔적이 남아있다.

비슈누와 브라흐마, 그리고 파괴의 신 시바.


이 사상에서의 '파괴'는 단순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순환이 시작되는 점에 가깝다.

무너뜨려야 다시 지을 수 있고, 한 번 태운 자리에서야 새로운 씨앗이 자랄 수 있다는 믿음 같은 것.

앙코르와트 벽조 가까이 다가가 천장을 올려다보면 훅 꺼져있는곳, 새 돌로 메워져 있는 곳, 처음 그 모습 몇백년째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 제각각이다.


일부는 허물어지고, 일부는 재탄생되었으며, 일부는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집도, 직장도, 계획도 크게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조금씩 삭고, 부서지고, 처음과는 전혀 다른 형태가 되어버릴수도 있다.


그럼에도 끝내 남는 건 그 시간에 내가 어떤 마음으로 서 있었는지라는걸 앙코르와트의 일출을 보며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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