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프롬, 붙잡지 않아도 남는 것들

툼레이더 영화 촬영지에서의 사유

by 쏘헤니

따프롬 사원 입구에 들어가는 길부터 순탄하지 않다.

5-6살 되어보이는 아이들 무리가 부채와 팔찌를 흔들며 1달러를 외친다.

한국말을 곧 잘해 보일때마다 사서 모아둔 팔찌가 이제는 더 이상 있으면 안 될정도로 쌓였다.

아이들 무리를 헤쳐 입구에 들어서면 사원 특유의 습기와 눅눅한 돌냄새가 바람을 타고 들어온다.


길을 따라 조금씩 들어가다보면 사원을 잠식한 스펑나무의 자태가 시야를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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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균열이 간 돌기둥들은 더 이상 원래의 각을 유지하지 못하고 나무뿌리에 기대어 간신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접착제하나 없이 쌓아올린 돌 사이를 거칠게 비집고 뿌리를 내린 나무는 하늘을 찌르듯 치솟아, 사원을 짓밟으며 일어서는 생명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길이가 어찌나 긴지, 고개를 젖힌 채 한참을 올려다봐야지 비로소 나무꼭대기를 마주할 수 있었다.


돌 사이로 뻗은 강직한 뿌리와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나무 줄기는 어느새 사원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있었다.

애초부터 그랬던 것 처럼.


참 이상하다.

원래 주인공은 분명 사원일텐데, 지금 이 곳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오래된 돌이 아니라 그 위로 자란 나무다.


설계도에 없던 존재가, 수백년이 흐른 후 이 사원을 상징하는 얼굴이 되었다.

처음에 의도한 것이 아닌 뒤늦게 찾아온 무언가가 뒤섞이는 과정에서 그 가치를 더 특별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여기에서 느낀다.


나무는 사원을 무너뜨리는 존재이자 동시에 지켜주는 존재이기도 했다.

침범과 보호가 한 몸처럼 엉켜 있는 모습을 보며 괜히 내 마음을 투영시켜보기도 한다.

내가 도망친줄 알았던 그곳은 오히려 나를 지켜준 곳이기도 했다.


낯선 땅에 혼자 서있다는 사실은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설렜지만 이또한 또다른 불안요소가 되어버린다.

지금 이 순간에는 그 불안조차 거대한 뿌리 아래 묻혀버린듯 했다.


사라지는 것과 남는 것의 기준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몇백년을 버텨온 돌보다 나중에 자라난 나무가 사람들을 더 끌어당긴다.


오래되었다고 해서 더 귀한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라고해서 끝까지 중심이 되는것도 아니라는걸

이 곳은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돌 사이를 비집고 나온 나무 뿌리를 보면서 한때는 내 삶의 전부라고 믿었던 것들도

언젠가는 이렇게 다른 무언가의 밑거름이 되겠지.


이곳에서의 고요한 시간들은 내가 붙잡고 있던 것들이 정말 전부였는지 조용히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낯선 땅에서의 흔들림이 오히려 나를 다시 자라게 하고 있었다.


꼭 붙잡고 있어야만 한다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내가 쥔다고 달라지는 건 아니라는 것을 이 나무가 조용히 알려주는 듯 했다.


돌 위에 자란 나무처럼, 나도 내가 떠나온 자리 위에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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