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하루, 그 날 경험한 일들에 대한 기록
어제 있었던 일이다.
내가 센터장으로 있는 단과대학 내 작은 센터에서 일하는 조교 K선생님이 출산휴가를 써야 할 시점이 임박했다. 우리는 한 달 전부터 여유있게 대체직 공고 등 관련 절차를 준비했고, 선생님이 제 때 휴가를 가실 수 있도록 각자 해야 할 일도 말끔히 정리했다. 하지만 정작 지원자가 없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마침내 단 한 명의 지원자가 등장했는데, 학장님 등 면접에 참여할 교수님들과의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그 단수의 지원자가 지원을 철회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지원자는 20대 중후반의 여성이었다. K선생님은 본인도 20대 중반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며 업무 습득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업무의 난이도는 철회의 이유가 아니었을 것이다. 1년이라는 기간동안 조교 업무를 하는 것이 그 지원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국립대 조교 대체직의 경우 교육공무원 초봉부터 월급이 시작된다. 교육경력이나 직장경력은 최대한 초라하게 인식되어 인정되고, 그 결과 20대 중후반의 여성이 대체인력으로 선발되어 받을 수 있는 월급은 20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그 팍팍한 돈을 받기 위해 누군가를 잠깐 '대체'하는 쓰임을 받는 지원서를 작성하는 시간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최소한 설레이지는 않았을 것 같아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그 지원자에게 괜히 미안해졌다.
면접관으로 응해준 교수님께 추가 모집 공고를 내고 면접 일정을 뒤로 미루어야 한다는 소식을 전해드리자, 큰일이네, 우리 K선생님 출산휴가 늦어지면 안되는데, 하고 걱정하셨다. 뱃 속의 아기는 매일 매일 자라고 있고, 때가 되면 나올 것이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항상 어른들이다.
허둥지둥 추가 모집 공고문을 수정하고 결재를 진행하면서, 학교 안 지인들에게 좋은 분 계시면 추천해달라는 메일을 돌리기 시작했다. 한국인 대학원생이 그나마 많이 있다는 인문대학 출신 조교 선생님들부터 학과 교수님들까지, 좁디 좁은 인간관계를 유지해온 내 자신을 탓하며 최대한 비굴한 모습을 부각시킨 문장들을 완성해 송부했다. 나의 청에 가장 먼저 응한 사람은 내가 속한 학과 조교 선생님이었다. H선생님은 '어린이집 동기'로, 서로의 자녀가 학교(회사) 어린이집 같은 반에 소속되어 있다. 심지어 같은 선생님께 보살핌을 받고 있어 매일 어린이집으로부터 전달되는 아이들 사진에도 함께 등장한다. 그래서 일때문에 만나도 항상 시작과 끝은 아이들 이야기로 가득하다. H선생님의 결혼식도 참석했고, 그분이 임신했을 때부터 여성병원 및 출산준비 관련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해 각자의 아이들이 두돌이 된 지금까지 강한 유대관계로 이어져 있다. 최소한 나는, 그녀에게 강한 동료애를 느끼고 있다. 함께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다. H선생님과 등원, 혹은 하원시간에 가끔 마주칠 때도 있는데,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느리게 걷다가도 아이를 보는 순간 힘을 내어 번쩍 들어올리는 모습까지 나와 같아 가끔 안타깝고 서글퍼질 때도 있다.
H선생님은 학과에서 운영해온 계약학과 석사과정을 거쳐 일반대학원 박사과정까지 L선생님을 조심스럽게 추천했다. 지난 몇년 간 계약학과 운영을 맡아왔기 때문에 조교 경험도 있고, 무엇보다 박사학위 과정 이후 학교 안에서 행정업무 쪽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꽤 괜찮은 핏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당장 L선생님께 이메일을 보냈고, '추천를 해주어서 고맙고, 이에 대해 편하게 생각해보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 분은 50대 여성이다. 자녀들을 다 키워낸 후 석사과정을 시작했고, 학업에 대한 열의를 이어가 박사까지 마쳤다. 오랜 기간 경력이 단절된 50대 여성이 국내 대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한국사회에서 거의 없다. 대학 산학협력단 등 박사출신 인력이 필요한 부서가 있기 하지만 대부분 계약직이며, 그마저도 젊은 사람을 선호한다. '학교 안팎에서 일을 찾고 있다'는 그 분에게 부디 센터의 대체직보다 더 좋은 포지션이 기다리고 있기를 소망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센터 K선생님의 출산휴가가 늦어지면 안된다는 다급함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메일을 보낼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스스로를 탓했다.
학교 밖에서 조금 시간을 보내고 난 후 시계를 보니 어린이집 하원시간에 맞닿아 있어, 바로 학교로 돌아가기로 했다. 학교로 가는 길에 H선생님에게 문자가 왔다. 왠만해서는 문자로 업무 이야기를 하지 않는 분이다. 가끔 그 분께 문자가 온다는 것은 그만큼 일이 급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의 아이들이 하원을 하는 시간은 H선생님의 아이가 하원을 하는 시간과 같다. 내가 일을 빨리 끝내지 못하면 H선생님의 퇴근이 늦어지고, 나는 아이들을 찾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H선생님은 학교에 남아 일이 끝나기를 기다려야 한다. 나의 아이들이 집으로 가는 동안 H선생님의 아이는 혼자 어린이집에 남아 엄마를 기다려야 한다. 기필코 일을 제 시간에 끝내야 했다. 그것이 동료로서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최소한의 의무였다. 어린이집 주차장에 잠시 차를 세운 후 랩탑을 꺼내 운전석에 앉아 H선생님이 부탁한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한 손에는 핸드폰을 쥐고 다른 손으로 바쁘게 일을 처리했다.
아이들을 찾아 차에 태운 후 집으로 향했다.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다시 H선생님께 문자가 왔다. 내가 보낸 서류 중 하나에 오류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급하게 차 안에서 일을 하다 보니 실수가 있었다. 운전 중이라 수정이 불가하다는 답을 할 수 밖에 없었고, 평소 하원시간을 훌쩍 넘겨 집에 도착한 후에야 다시 메일을 보내 일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메일을 보낸 직후, H선생님은 감사하고 죄송하다는 문자를 다시 보내왔다. 아직 퇴근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 누구도 죄송해할만한 일을 하지 않았고 그 누구도 감사의 인사를 받을 만큼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단지 어떤 이의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마음이 궁색해진다.
2년 전 쌍둥이를 낳아 지금까지 키워오면서 나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만났다. 아이들을 낳아 키우기 전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세상이었다. 40년 가까이 살면서 나는 이 세상을 모르고 있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있어도 결코 닿을 수 없던 그 세상은 엘레베이터 안에서 아이들을 향해 웃어주는 노인의 미소일 수 있고, 아이들이 걷는 인도 위에서 거칠게 운전하는 오토바이 운전자의 쩐내 나는 육체일 수 있다. 부모와 '함께' 아이를 키우는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헌신일 수 있고, '노 키즈 존' 딱지를 크게 붙여놓은 카페 사장님이 지난달 매출액을 볼 때 터져나오는 한숨일 수 있다. 모두가 힘들기 때문에 그 누구에도 탓을 돌릴 수 없는 이 세상은 서로의 마음이 조금씩 더 가난해져야만 힘들게 유지될 수 있다. 당장 출산일이 다가오지만 대체직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K선생님, 박사 학위 소지자지만 계약직을 구하기도 벅찬 L선생님, 얼굴이 벌개질 정도로, 점심을 매일 거르며 일을 해야만 5시에 겨우 아이를 만날 수 있는 H선생님 모두 누군가의 엄마이며, 그 엄마는 그가 사는 세상으로부터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충분히 보살핌받지 못하고 있다. 누구의 탓인가.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저 우리 모두 가난할 따름이다. 대체 우리는 얼마나 더 가난해져야만 아이들을 위해 준비된 어른이 될 수 있는가.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