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집을 건드리다 / 권분자

by 권작가
물집을 건드리다.jpg


물집을 건드리다


권분자


1


능들의 경사면 위로

비눗방울 날아오른다

이곳, 반딧불이 곡예터 였었나?


둥근 지붕들이 생겨나고

산수유가 병풍屛風으로 가려주자

배내옷 수의로 갈아입는 노인의 뒷켠

분홍의 아기가 또 태어난다


두려움이던 반원의 표면

키 낮은 지붕에

나 굴뚝으로 서있고 싶었지


흰 엽전 연기 펑펑 솟구칠 때

오랜 정벌의 말발굽소리도 지우고 싶었지


익어 말랑해진 산수유 붙들고 있던

진홍꼭지 노을 속을

곡마단은 지친 봇짐을 매고 떠나는 거였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야 할지

부장품 뒤적거리던 나

슬몃 든 쪽잠에서 깨어나

솟구친 묏등 정수리를

더듬는 거였지


2


나비들에게 팔베개 내어주는

건기의 들판 꽃들은

물집의 한때를 추억한다


천마天馬 타고 올

목선 긴 사내 기다리다

그 물집 생겨난 거지


능이 전하는 귓속말을 엿듣던 나는

근 심 내 려 놓 고 행 복 하 시 라 는

암호 같은, 점자 같은

가렵다가 쓰라릴 사랑에 매혹된다


별에게나 읽어주던

물 가둔 점자책이

되려 더듬더듬 지문을 읽듯

그대에게 상상의 실밥을 들이미는 거였다


문이 문을 가둔 감옥이 열리고

피운꽃도 미련없이 버리자

결가부좌 면벽중인

홀씨로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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