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내 영혼은 탈곡된 밀짚처럼 너덜너덜했다.
은행이라는 거대한 철옹성을 믿고 맡겼던 내 거금이 홀랑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우울한 마음에 밤거리를 걷고 있는데, 발걸음마다 내 잔고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문득, 인생 뭐 있냐고, 득도한 듯이 살고 있는 선배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혹시 이 막막한 상황에 그가 던져줄 위로의 말이 있을까 해서 전화를 걸었다.
“지금 어디세요?”
“저수지에서 밤낚시 중이지. 자네는 요즘 어떻게 지내나?”
“은행 일로 심란해서 전화해봤어요.”
내 목소리는 마치 방금 짠 걸레처럼 축축했다.
“인생 다 그런 거여! 마음 편하게 먹어야지.”
“지우기에는 너무 큰 사건이었죠. 선배는 뭘 낚겠다고 이 밤에 낚시를…”
“낚싯대 던져놓고 캔 맥주 들이키다보면 모든 번뇌가 사라지거든.”
“글세요… 오히려 무섭겠는데요?”
“주위에 안개가 자욱하게 깔렸어. 앞이 한 치도 보이질 않아. 늦가을이라 그런지
날씨도 을씨년스럽고, 완전 무릉도원이네.”
나는 그의 말에 헛웃음을 흘렸다. 듣기만 해도 귀신이 출몰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으스스한 곳이 무릉도원이라니.
은행에 돈 떼인 나나, 물안개 속에서 귀신 낚을 것 같은 선배나,
둘 다 제정신이 아니긴 마찬가지였다.
“귀신 나올 것 같으니 주변이나 잘 살펴요.”
나는 겁 없는 선배에게 은근슬쩍 짓궂은 말을 했다. 그러자 그가 껄껄 웃으며 일갈했다.
“은행에 돈 떼인 너도 안 죽었는데, 귀신이 어딨냐? 귀신보다 무서운 건 탐욕과 불합리뿐이지!”
나는 할 말을 잃었지만, 그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나에게는 어쩜 귀신보다 무서운 게 은행의 배신일 것이다.
그날 밤, 그가 캔 맥주를 몇 개나 비웠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밤은 그렇게 두런두런 동트고 있었다.
우리는 오래도록 수다를 떨었고,
그날 이후 나는 은행에서 거액을 떼이고도 살아남은 여자라는 훈장을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