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 4년 차. 배달 음식을 시킨 횟수는 10번 이내.
물론 내내 집밥만 먹었다는 건 아니다. 퇴사한 전 직장의 가장 좋은 복지는 아침, 점심, 저녁을 제공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1인 가구인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기에 주로 회사에서 주는 밥을 먹었다.
본격적으로 집밥을 먹기 시작한 건, 퇴사를 하고 나서였는데, ‘집밥’에 대한 거대한 포부가 있었냐? 하면, 그건 아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도 대개의 식사는 엄마가 직접 차린 '집밥'이었고, 그 밥을 먹으며 30년 세월을 살아온 나로서는 집밥이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수입이 없으니 매일 밥을 사 먹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그래서 '내가 나를 먹이는' 일이 시작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1인 가구로 살면서 매일 나를 위해 요리하고 (나름) 예쁘게 차려서 먹는 일.
백수 기간 동안 가장 중요했던 일과가 밥을 먹는 일이었다.
자고 싶을 때까지 늘어지게 자다가 해가 중천에 떠서 일어나는 생활을 며칠 반복하다 보니 소위 '현타'가 왔다. 그래서 다시 알람을 맞추고 일찍 일어나 아침에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공복 운동이 체지방을 잘 태우니 어쩌니 해서 불어난 살도 좀 빼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안 하던 짓으로 칼로리를 소모하고 나면 몸에서는 당장 채우라고 난리를 쳤다. 그렇다고 아무거나 먹기는 싫었는데, 애써 흘린 땀이 배달 음식이나 인스턴트로 치환되는 게 별로였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요리를 꽤 한다고 자부하지만 집밥을 차리는 일이 그렇게 순식간에 되지는 않았다.
그러기에 내 부엌은 상당히 귀엽다. 화구를 2,3개씩 동시에 쓰고 싶은데, 2개뿐인 화구에 냄비 하나를 올리면 그 마저도 꽉 차서 화구는 하나밖에 쓰지 못한다.
그러니까 파스타를 만든다고 치면, 한 화구에 면을 삶고 한 화구에 마늘을 볶는 일이 동시에 되기 힘든 거다. 시간은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배고픔은 그에 비례한다.
그럼에도 굳이 집밥을 만들어 먹은 이유는, 집밥이 채우는 물질적인 칼로리뿐 아니라 마음적인 칼로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나이는 먹고, 돈은 없는데, 취직할 의지도 없이 매일 시간만 보내던 백수 시절.
부모님 뵙기도 죄송스러워 혼자 사는 원룸에서 낑낑대며, 자주 나 자신이 한심하고 스스로를 망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던 시절.
내가 세상에서 제일 못난 사람 같고, 나는 왜 이렇게 잘 풀리는 일이 없는지 한탄하다 보면 '그때 왜 그랬을까? 그땐 왜 이렇게 하지 못했을까?' 하며 시간을 자꾸만 거꾸로 돌리기 시작하고, 과거의 선택들이 현재의 나를 절망으로 몰아가는 기분이 들면... 그러면 그날 하루는 망했다고 보면 된다. 끝없는 우울에 혼자 빠져나갈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잠겨 있곤 했다.
그럴 때, 나는 나를 위한 밥상을 차렸다.
세상 아무도 나를 인정해 주지 않고, 사랑해 주지 않고, 일으켜 주지 않는 것 같을 때.
양파 껍질을 벗기고, 파를 썰고, 쌀을 씻고, 고기를 볶는 과정은 내가 나에게 손을 내미는 일이었다.
'네가 아무리 한심하고 보잘것없고 쓸모없는 것 같아도, 이렇게 정성 들인 밥을 먹을 자격은 있어.'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었다.
괴로운 마음이 나를 괴롭힐 때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부엌에 섰다.
냉장고에서 자잘한 재료들을 꺼내 물에 씻으며 마음을 조금 털어내고, 양파를 썰며 눈물을 흘리다가, 이내 완성된 밥을 먹으면 조금 괜찮아졌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어서 신기하게도, 배가 채워지면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든든해지면 몸에도 힘이 난다. 그래서 백수 시절, 나는 계속해서 직접 만든 집밥으로 스스로를 응원했다.
“야, 나라도 널 응원하니까 먹고 힘내. 먹으니까 좋지? 심지어 꽤 맛있잖아? 그럼 좀 해 볼만하잖아, 살아 볼만하잖아.”
그렇게 나는 나를 먹이는 일로 내 하루를 살아 볼만하게 만들었다.
사람은 결국 먹어야 산다는 말이, 나에게는 딱 들어맞았다. 나는 그렇게 나를 먹이며 어둡고 긴 터널을 겨우 건너왔다. 그리고 이제는 말하고 싶다. '집밥의 힘'에 대해서, 나를 먹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스스로를 향한 응원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