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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 Jun 04. 2024

대구에서 진보주의자로 산다는 것

1.  Prologue  "보수의 성지, 대구는 오늘도 안녕하십니다."

 나는 민주당원도 어떠한 정당의 당원도 아닙니다, 진보성향의 시민단체에 소속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이 글에서 말하는 진보주의자라는 용어는 특정한 신념을 가지고 의식적으로 행동하는 진보주의자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하였습니다.


 나는 진보주의 자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딱히 다른 용어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보수의 성지라 불리는 대구에서는 국민의힘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 만으로도 진보주의자 취급을 받습니다. MBC뉴스를 본다는 이유만으로 민주당 지지자로 여겨집니다.  아니 사실은 좌파라 불립니다. 적어도 대구에서의 보수와 진보의 구분점이 아주 오른쪽에 있습니다.


 대구사람들의 서로의 정치적 입장을 아주 쉽게 표현합니다. 만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자기와 정치적 입장이 같은 것이라는 확신도 있겠지만, 다른 입장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서로 증명하는 과정 일지도 모릅니다.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나도 같은 편이라는 확신을 주는 과정, 그래서 대구 사람들은 정치적 입장을 확고히, 선명히 표현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나라가 망해도 국민의 힘을 찍는다" 이 말을 하는 진짜 속내는 생존의 본능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나는 앞으로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대구에 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  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자긍심을, 대구를 안타까이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스로에게 자존감을 올려주고 싶습니다.

 

 대구에도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Prologue  "보수의 성지, 대구는 오늘도 안녕하십니다."

 1. Prologue 

"보수의 성지, 대구는 오늘도 안녕하십니다."


 나는 대구에 산다.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몇 년간의 시간을 제외하면 평생을 나는 대구에서 산다.

 식당에서도 술집에서도 교회에서도 카페에서도 정치적 사안에 대해 진보적 성향의 말 한번 제대로 하기 힘든 지역.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 TV에서는 TV조선 뉴스가 나오고 있고, 옆자리 아저씨는 극우유튜브 방송을 소리 높여 켜놓고 밥을 먹는다. 지하철 입구에는 한 무리의 노인들이 좌판을 펼쳐놓고 '문재인 구속, 조국구속'서명을 받고 있다.

 교회예배 시간에 기도자는 좌익의 준동을 개탄하고 목사는 나라를 망치는 빨갱이들을 경계해야 한다며 소리 높여 설교한다. 나라가 망해도 국민의 힘을 찍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난전 아주머니와 이에 동조하며 목소리 높이는 할머니가 소란한 시장통.

 오늘도 TV에는 홍준표시장이 동대구역광장에 박정희 동상을 건립을 강행한다는  뉴스가 올라오고 거리에는 이를 지지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다.

 나는 이런 대구에 산다.


 나는 가급적 아무와도 정치적 견해를 나누지 않는다. 그나마 가지고 있던 인간적인 신뢰마저 무너져 지금까지의 신뢰가 깨지고 더 이상 가까워지기 힘든 사이가 되기 쉽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상대방을 재단하는 것 도 싫지만 상대방 역시 좌파로 나를  단정하고  평판을 주변에 일방적으로 흘리는 것 또한 불편하기 때문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지역색에 대해 인식하게 된 처음 기억은 1980년 어드메인 것 같다.

'광주에 빨갱이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경상도 사람들은 광주에 가면 맞아 죽는다'

텔레비전에 "광주사태" "광주폭동"이라 보도하던 그 사건을 전후하여 전라도는 빨갱이들이 득실대고 그들은 경상도 특히 대구사람들을 혐오한다는 소문이 흉흉하던 시절. 나는 까까머리 중학생이었다.

대학을 가고 "광주민주항쟁"을 알게 되고 1987년 유월 항쟁을 거치면서, 이곳 대구에도 봄날이 오는 줄 알았다. 그러나, 삼당합당과 함께 더더욱 공고해진 보수의 성지가 되고 말뚝을 꽂아도 보수당이면 당선된다는 땅. 대구 가 되어버렸다.

이곳은 여전히 동토이다. 아니 시간이 갈수록 더더욱 보수의 장벽은 높고 공고해지는 것 같다.


 이런 도시에서 진보적 성향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아니 가능이나 할까?

 하지만, 이곳에서도 '박근혜 탄핵 집회'가 뜨겁게 열렸고, '박정희 동상 건립'과 관련한 반대투쟁은 외롭지만 지금도 가열하게 열리고 있다. 비록 당선되지 못할 것을 알지만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정당들은 후보를 꾸준히 내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 때에는 놀랍게도 몇몇의 민주당 시의원을 배출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또한, 20대 국회에서는 민주당의 김부겸, 무소속 홍희락을 당선시키기도 했다.

 그래도 대구 MBC는 항상 진실의 편에 서려 노력했고, 그래도 이곳에서 노무현대통령의 추모집회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잊고 살다가도 각종 선거를 치르면서 혹은 정치적 이슈들이 부각되는 시점이 되면 대구에 사는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들은 더더욱 힘들어진다. 지역에서 느끼는 고립감은 차치하고, 타지 사람들의 비난과 혐오는 감내해야 한다 생각하지만 무차별적으로 날아드는 화살은 너무 아프다.

 '대구니까'

 '역시 대구 인간들이란'

 '대구에 무엇을 바라'

 '일베의 도시에 무엇을 기대하랴'


개인적으로 지난 대선 이후로 일체의 뉴스를 보지 않고 살려 노력했다. 아니 정치뉴스를 보는 것이 정말 고통스러웠다. 대선의 패배도 쓰라렸지만, 그 모든 패배의 중심에는 늘 대구가 있다. 각종 커뮤니티에도 댓글에도 대구는 욕받이이다.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민주당과 진보진영의 압승으로 끝이 났지만, 여전히 그 승리 어디에도 대구는 없다.

 지역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진보주의자, 타지에서도 욕먹는 진보주의자, 이것이 대구에 사는 진보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처지이다.


 미안하다. 대구에 산다.

 미안하다 대구시장은 홍준표이다.

 미안하다 대구의 12개 지역구 국회의원은 전원 국민의힘 소속이다.

 미안하다 대구의 기초의원의 거의 전부가 국민의힘 소속이다.

 미안하다 대구의 모든 기초단체장은 국민의힘 소속이다.

 

그래서 대구는 평화롭다.

전국에서 아파트미분양과 가격하락폭이 제일 커도, 27주 동안 연속하락 해도 정권을 원망하지 않는다. 평화롭다

-(https://v.daum.net/v/20240523150026645)

대구의 경제지표가 역대최저치를 기록해도 홍준표시장을 원망하지 않는다. 평화롭다

-(https://deagunews.tistory.com/55)

대구의 취업자수가 3개월 연속 하락해도, 실업률이 전국에서 몇 번째로 높아도, 정권도 시장도 원망하지 않는다. 대구는 평화롭다.

-(https://v.daum.net/v/WIpP3DHElW)



대구는 원래 이런 곳이었던가?

대구는 지역적으로 원래 보수적이었던가?

대구사람들은 원래 체질적으로 보수인이었던가?

대구사람들은 뼛속까지 보수의 피가 흐르는가?

대구사람들은 날 때부터 보수로 태어나는가?


대구가 항일의 도시였고 항쟁의 도시였다면 과연 누가 믿을까

수많은 항일운동사들의 고향이고 창의적이고 진보적인 예술가들의 고향이었다면 누가 믿을 수 있을까

4,19의 도화선이 되었던 2,28 학생운동이 대구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생각이나 해 보았을까

박정희시절 밤사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버린  독재와 사법폭력의 희생자 인혁당사건의 고향이란 것을,

전태일열사의 고향이 대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곳 대구가 어떠한  자랑스러운 민주주의 전통을 지닌 도시였는지, 어떻게 보수의 도시로 바뀌었는지 지난 역사들을 되짚어보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다. 이를 통해 대구의 참된 정체성을 확인하고 올곧은 민주주의 전통과 역사를 복원하고 그 자긍심을 나눠가지는 것이 보수의 성지, 아니 보수의 섬으로 전락한 대구에서 살아남고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모든 대구들에게 희망의 메시지, 구원의 메시지가 될 수 있으리라 감히 생각해 본다.



1960년 대구에서 2.28 민주운동 당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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