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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아과 쌤 Jan 08. 2020

#4. 입원 첫날, 몸무게 3킬로그램이 늘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몸이 불었다.

- 168 센티미터에 60 킬로그램입니다.


입원 절차를 밟고 아직 가시지 않은 통증을 안은 채, 입원하게 될 병실 침대 위에 앉았을 때 이야기다. 간호사 선생님이 키와 체중을 물어보았다.


물론 나는 167 센티가 조금 넘은 신장, 61~62 킬로에서 왔다 갔다 하는 몸무게의 좀 작은 체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간호사의 질문에 키는 반올림해서 올렸고, 체중은 반올림해서 내려서 대답했다. 재빠르게 계산해서 대답한 것은 아니다. 무의식적으로 그리 이야기했을 뿐. 어쩌면 내가 그렇게 믿고 싶었을지도 모르고...


입원 둘째 날 아침 일찍 간호사 선생님이 나를 깨웠다. 체중을 재러 가자고. 막 일어나서 정신이 좀 없는 채 병동에 있는 전자 체중계 위에 올라섰다. 밤사이에 나의 왼쪽 팔에 능숙하게 주사를 놓아주었던 그 간호사 선생님은 갑자기 나를 향해 의심쩍은 눈초리를 보내며 말을 꺼냈다.


- 김 선생님. 체중이 60 킬로라고 하셨죠!?

- (뜨끔) 네~에~


그리고 눈을 비비면서 체중계의 숫자를 보았다. 64.5 킬로그램.

영점 조정이 안되었나 싶어서 내려갔다 다시 올라갔다. 64.5 킬로그램.


- 어, 좀 많이 나왔네요.. (아하하하. 요 근래 좀 잘 먹긴 했어. 근데 그래도 좀 많이 나오긴 했네.)


간호사는 나를 쳐다보다가 시크하게 한마디 던지고 병동 자리로 돌아갔다.


- 뭐, 수액이 많이 들어갔나 보죠.

- ...


그렇다. 나는 어제 수액을 하루 종일 맞았지만, 자느라고 소변을 거의 보지 않았다. 내 몸은 물로 부어있는 상태로 무거워진 것이다. 하루에 3리터 정도 수액을 맞았으니 3킬로그램 정도 몸무게가 더 나왔겠구나 싶었다.


병동 자리로 갔던 간호사는 나에게 종이 한 장과 플라스틱 항아리 같이 생긴 소변통을 주었다.


- 먹는 거랑, 대소변 보는 거 종이에 기록해주세요. 아이앤오(I/O) 아시죠? 소변 받아서 측정하는 통은 여기 있습니다.



아이앤오(I/O)는 인풋(Input)과 아웃풋(Output)의 앞글자를 따 줄여 말하는 것이다. 인풋은 먹는 것, 수액줄로 공급받는 수분처럼 우리 몸으로 들어오는 양을 의미한다. 아웃풋은 몸에서 나가는 양을 말한다. 소변과 대변, 심지어는 토하는 것까지.


치료 방침상 수액 공급을 매우 세심히 하는 소아청소년과의 분과들, 소아혈액종양과, 소아심장과, 혹은 중환자실 등등에서 수련을 받을 때 아이앤오 조절은 매우 중요한 임무 중에 하나였다. 작은 아이의 몸에 수액을 너무 많이 공급하면 폐에 물이 차 호흡 곤란을 만들 수도 있다. 반대로 수액을 적게 주었는데, 소변을 너무 많이 보는 경우 몸에 혈액량이 부족하여 혈압이 떨어지거나 콩팥에 손상이 갈 수도 있다.


아이앤오 조절을 할 때는 인풋에서 하루에 들어가는 수액량에 신경을 많이 쓰고, 아웃풋에서 소변량에 신경을 많이 쓴다. 수액량은 수액세트에 수액 들어가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도구가 있어서 조절이 가능하다. 소변량 조절은 소변을 보게 하는 이뇨제를 써야 한다.

보통 병동에서 아이앤오를 점심과 밤 10시쯤, 간호사 선생님들 3교대 끝날 때쯤 종합해서 점검한다. 문제는 늦은 밤 아이앤오 점검 결과, 공급받은 수액량에 비해 환자 분이 소변을 너무 적게 봤을 경우다. 결국 이뇨제를 사용하여 소변을 보게 하는데, 이러면 환자 분이 밤새 화장실을 들락날락하게 되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 낮부터 아이앤오 챙겨서 미리 이뇨제 쓰라고 몇 번을 얘기하니? 밤에 얼마나 고생했겠어.


이렇게 나를 꾸중하시는 선배에게 낮에 일이 산더미 같은데 어떻게 그것까지 챙길 수 있는지 불만을 토로하고 싶었지만 나중에야 깨달았다. 바쁜 와중에서도 섬세하게, 환자의 편의까지 고려해서 일을 하는 게 능력이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좀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많은 아이들과 보호자를 밤새 불편하게 했다.


다시 지금의 나에게로 돌아와서,

입원 둘째 날 아침 64.5 킬로그램을 화면에 띄웠던 체중계는 다음날 65.9라는 숫자를 보여주었다. 아이앤오를 적은 종이를 보면 소변량이 적은 것이 확실했다. 몸에 수분이 과한데, 소변으로 안 나오는 것은 무엇인가 배변 활동을 막고 있다는 이야기. 강한 의심이 드는 것은 통증 조절을 위해 쓴 모르핀이었다. 이제 통증도 없고, 나의 주치의인 C 선생은 모르핀을 중단하자고 하였다.


모르핀을 중단한 그날 나는, 내가 예전에 밤새 아이들 소변을 보게 한 것에 대한 죄를 한꺼번에 받은 것처럼 30분마다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면서 소변을 보았다. 소변만 보는 게 아니라 측정해서 기록하는 것까지 하려니 번거로웠다. 소변을 너무 자주 봐서 아이앤오 체크하는 종이를 한 장 더 달라고 했다. 낮에 화장실 왔다 갔다 하는 건 그렇다고 쳐도 자다가 소변 마려워서 깨고, 다시 눕기를 반복하기란 너무도 불편했다. 어두운 밤에 불을 켜고 종이에 소변량을 기록하면서 '예전에 내가 많이 잘못했구나, 세심하다는 것이 정말로 타인에게는 생각보다 큰 의미를 가지는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고생을 좀 했지만 그동안 들어갔던 수액을 거의 모두 배출한 나의 소변 레이스는 서서히 잦아들었고, 퇴원이 가까워지면서 아이앤오 기록도 중단하게 되었다.  


퇴원하는 날 체중계에 몸을 올렸다. 61 킬로그램.

60 킬로그램은 아니지만, 뭐 그리 큰 차이는 아니지. 거짓말을 한 건 아니야. 이런 생각과 함께 빙긋 웃었다.



의사이지만 아파서 입원한 경험을 쓰고 있습니다. 앞선 이야기는 아래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1. 선생님, 입원하셔야겠는데요?

#2. 의사도 주사는 싫어

#3. 아픔을 느끼는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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