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해서 잠만 자다가 주사를 한 번 더 맞았다
우여곡절 끝에 췌장염 진단을 받고 입원하게 되었고 내과 과장 C 선생이 설명한 치료 방침은 간단히 두 가지였다.
1. 금식 및 수액 공급
2. 통증 및 불편한 증상 조절
사실 이 병은 금식을 하면 저절로 좋아지는 단계를 밟기에 조금 괴롭다 하더라도 금식을 하고 아무것도 못 먹으니까 수액으로 수분 보충을 하되, 지금의 염증으로 인해서 생기는 통증이나 구역질, 토하는 증상은 약으로 가라앉히면서 지켜보겠다는 말이다. 그리고 질환의 경과를 확인해보기 위해 2일 정도 간격으로 아밀레이즈 (Amylase: 췌장에서 분비되는 효소) 수치를 확인해 볼 예정이며, 합병증이 많이 동반되는 병인 만큼 통증이 좀 가라앉으면 초음파나 CT를 통해서 췌장을 다시 한번 확인해볼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C 선생은 아직 이야기하기는 좀 이르지만 식사를 다시 고려하는 것은 통증이 완전히 가라앉은 다음이므로 지금은 한동안 통증 조절하면서 쉬시는 것이 좋겠다고 덧붙였다. 대충은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내과 선생님한테 다시 한번 구체적으로 차근차근 설명을 들으니 마음이 좀 놓였고, 특히나 차분하고 정중한 어조의 말투를 들으니 더욱 그러했다. 분명 C 선생은 대학병원에서 전공의 시절 내내 환자 분들에게 교직원 칭찬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병원마다 다르겠지만 예전에 내가 있던 대학병원에서는 퇴원 직전에 종이를 나눠주는데, 거기에 칭찬할 점, 부족한 점을 적는 부분이 있었다. 여기에 이름이 적히면 칭찬 교직원으로 올라오는데, 대략 한 달에 1~2번 정도 받으면 많이 받는 편이었다. 많은 입퇴원 환자 분들이 있지만 아마도 퇴원 준비하는 동안 정신이 없어 칭찬 카드까지 쓰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진짜로 친절하다고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고. 나는 전자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환자 분들만 아시겠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병원에서 입원 첫날 나는 물을 포함해서 일절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로 누워만 있었다. 응급실에 처음으로 맞은 모르핀으로는 내 통증이 다 가라앉지 않은 상태였기에 병실에 올라와서 한번 더 투여받았고, 구역질과 어지러움이 있어 이에 도움이 되는 주사약도 맞았다.
...과연 모르핀의 효과는 과연 놀라운 것이었다. 두 번째 주사 이후로는 통증을 거의 느끼지 못했고 명치에 무언가 뭉쳐있다는 느낌만을 받을 뿐이었다. 그리고 투약 후에는 어김없이 잠이 쏟아졌다. 그렇게 쉽게 잠드는 편이 아닌데도, 주사를 맞은 후에는 낮이든 밤이든 베개에 머리를 내리는 순간 잠이 들어 두세 시간 정도 뒤에 개운하게 깼다. 이런 것 때문에 프로포폴을 그렇게들 사용했었구나 싶기도 했고.
입원해서 시간이 생긴만큼 책도 챙겼고 글도 쓰고 싶었는데, 모르핀을 맞을 때마다 잠을 잤고 깨어나서 활자를 보면 어지러워서 구역질이 나기에 거의 하지 못했다. 넷플릭스나 유튜브 영상도 보기 쉽지 않았다. 입원 첫날은 거의 잠만 잤다고 봐야 한다.
그렇게 입원 첫날 하루 종일 잠을 자고 밤에 수액걸이를 끌고 화장실에 가게 되었다. 화장실 불을 켜고 용변을 보고 난 후에 수액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건 약간 편집증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수액을 보면 습관적으로 수액의 종류와 떨어지는 속도를 확인한다.) 수액이 흐르지 않도록 잠겨 있었던 것이다. 잠들기 전에는 150cc/hr로 잘 떨어지고 있었는데, 분명 저녁에 간호사가 약을 투여하면서 잠시 잠가두었던 수액을 약 투여가 끝난 후에 다시 열어두지 않은 것이다.
잠시 수액을 투여받지 않은 것은 크게 상관없는데, 문제는 수액 줄이 막히는 것이다. 수액 줄이 막히면 다시 바늘로 찔러서 수액 줄을 잡아야 한다. 흔히들 라인을 다시 잡는다고 한다.
- 저, 이거 수액 일부러 잠가둔 건가요?
병동 간호사실에 가서 물어보았다. 그새 병동 근무자는 바뀌어 있었고, 밤 당직을 맡은 간호사는 그럴 리가 없다는 듯이 나에게 와서 수액줄을 확인하였다. 그다음은 모두가 상상한 시나리오대로다.
근무자가 바뀌었기 때문에 이 사람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었고, 우리 둘 다 원인이 무엇인지는 암묵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용히 처치실로 갔다. 그래, 오른팔에 있어서 불편하기도 했어. 밤 근무자에게도 오른쪽에 있어 불편했었는데 잘되었다고 말하며 애써 좋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왼쪽 팔을 내밀었다. 문제는 간호사가 혈관을 살피는데 내가 아파하는 쪽을 살피는 것이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보통 팔이 접히는 오금 부위의 혈관이 통통하고 아픔도 덜하다. 하지만 이 분은 오금을 완전히 배제하고 손목에 가까운 부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 아, 저는 이쪽이..
라고 말할 새도 없이 능숙한 우리 간호사는 라인을 잡아버렸다. 윽. 뭐 그래도 순간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기는 팔을 움직일 때 마치 신경을 건드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후에도 좀 불편하긴 했다.
수액 줄이 막히는 일은 병동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다. 특히나 혈관이 연약하고 협조가 잘 되지 않는 소아의 경우 라인 잡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 수액 줄이 막혀버리면 의료진과 보호자 모두 꽤나 부담이다. 아이들은 수액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활발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수액이 막혀버리기도 하는데, 그런 이유 말고 이렇게 의료진의 실수로 인해서 라인을 다시 잡아야 하는 일이 생기면 난리가 난다. 그러면 병동의 수간호사가 달려가서 미안하다고 하고, 회진 돌러 온 전공의나 담당의도 우리 의료진이 잘못해서 아이를 괴롭혔다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드린다. 업무의 과중함 때문에 실수야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전문가라면 아이들이 불편을 좀 더 덜게 해주었어야 하니까 말이다. 대처를 잘못하는 경우 심지어 환자, 보호자와 의료진 사이의 관계에 금이 가기도 한다. 사소한 것 같지만 매우 큰 일이다.
나야 성인이기 때문에 수액 줄을 다시 잡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고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치고 넘어갔지만, 그래도 주사 바늘로 여러 번 몸을 찔리는 게 기분이 좋지는 않다. 의사지만 우리도 주사는 싫다.
의사이지만 아파서 입원한 경험을 쓰고 있습니다. 이전 이야기는 아래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