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11일 (화요일), 장맛비
1. 나는 눈에 콩깍지가 씌어있다. 가수 장윤정의 <콩깍지>라는 노래에서는 ”사랑의 콩깍지“가 씌면 ”내 눈엔 그 사람만 보“인다고 하는데, 내 눈에 있는 콩깍지는 고약하게도 사물이 찌그러져 보이게 한다. 정확히는 망막전막(Epiretinal membrane)이라는 질환이다. 망막 위에 불필요한 막이 하나 더 생겨나서 사물이 휘어져 보이는 병이다. 10여 년 전에 처음 진단을 받았지만 그동안 증세가 심하지 않아서 주기적으로 추적 관찰만 해 오고 있었다. 한 번은 이 막이 저절로 떨어져 없어지는 경사(?)가 있었지만 기쁨은 잠시뿐. 떨어져 나간 막은 눈 안에 그대로 남아서 어항 속의 해초처럼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심한 비문증이 찾아온 것이다.
2. 원래 망막전막으로 인한 사물의 휘어짐 증세는 그리 심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나는 새로 찾아온 비문증이 훨씬 더 불편했다. 그런데 비문증은 일반적으로 따로 치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냥 참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 지내다 보면 뇌가 적응을 해서 좀 덜 불편할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눈앞에 해초 같은 그림자가 둥둥 떠다니는데 그걸 못 본 척 참고 지낸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나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애써 무시하고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오히려 그럴수록 더 미쳐버릴 것 같을 때도 있었다.
3. 시간이 지나도 나의 뇌는 ‘적응’이란 것을 잘 못하는 것 같았다. 눈앞에 떠다니는 녀석들을 마법 지우개처럼 뇌 속에서라도 삭삭 지워주기를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에 나는 마주 앉은 상대방의 얼굴을 주시하고, 지나가는 풍경을 더 집중해서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았다. 눈 안의 비문은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노래를 부르며 계속 어른거리지만,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그저 내 할 일을 하고 내 갈길을 가는 법을 배운 것이다. 함께 있는 사람과 내 앞에 펼쳐진 풍경에 조금 더 조용히 집중할수록 비문은 더 힘을 잃는 듯하다.
4. 오늘 지인 한 명을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에 직장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아서 대체적으로 만족하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고 정리되지 않는 잡다한 고민거리들도 많은 모양이었다. 문득 내 비문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내 주변의 자잘한 작은 일들까지 모든 것이 깔끔하고 만족스럽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것들에 에너지를 빼앗길수록 자신만 힘들고 불행해진다. 내가 좋아하는 책의 제목처럼 “Don't Sweat the Small Stuff”, 사소한 일들에 너무 용쓰지 않는 편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