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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슬프고, 저래도 슬픈 마음

엄마의 인지기능 변화

by 함태진


두 달 전. 요양원에 계시던 엄마는 갑자기 밤에 심한 구토와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1.

엄마는 응급실로 실려갔고, 이내 뇌출혈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한 달간 병원에서 격리된 채 치료를 받았다.


다시 요양원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의 상태는 이전보다 훨씬 더 나빠져 있었다. 나를 잘 알아보지 못했고, 말수는 없었으며, 표정도 거의 사라졌다. 대화를 시도해도 별로 반응이 없고, 눈을 맞추는 일조차 어려워졌다.


매번 ‘이렇게 나빠질 수가 있나'라며 좌절했지만, 그다음에 면회를 가보면 그전보다 또 더 나빠져 있었다. 예상을 갱신하며 계속 내리막길을 걷는 게 당연한 일이 되어 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아예 별 기대를 하지 않기로 했다. 기대는 실망을 낳고, 실망은 마음에 깊은 생채기를 남길 뿐이었다.


2.

면회실로 들어서자, 잠시 후 휠체어를 탄 엄마가 들어왔다. 오늘도 엄마의 얼굴은 무표정했고, 시선은 초점이 없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은 엄마가 오늘따라 면회실에 오기 싫다고 고집을 부리셨다고 귀띔해 줬다.


“엄마, 내려오기 싫었어요? 태진이가 왔는데도?”


내 말에 엄마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작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태진이… 보러 왔잖아.”


순간 당황했다. 나는 이제 엄마가 더 이상 나를 몰라본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첫눈에 나를 알아보신 것 같아서였다.


옆에서 아내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얼굴이 더 좋아지셨어요.”

그러자 엄마가 또 대꾸했다.

“얼굴이 좋아... 점점 젊어지려고 하나 봐.”


아내와 나는 반갑고 놀라운 마음에 박수를 쳤다. 엄마가 대꾸를, 그것도 농담을 섞어서 하다니. 여전히 얼굴은 무표정하셨지만 말이다.


“어머니, 비법이 뭐예요?”

아내가 다시 물었다. 그러자 엄마가 또 대답했다.

“밥 잘 먹고… 잘 웃고.”
“맞아요. 그리고 또 잘 자고!”

내가 신이 나서 맞장구를 쳤다.


이번에는 엄마가 미세하게 웃었다. 예전처럼 깔깔대는 웃음은 아니었지만, 입꼬리가 아주 살짝 올라간 것 같았다. 나로선 그 정도면 충분했다.


나는 엄마가 예전부터 나에게 '잠이 제일 중요하다'라고 했던 에피소드를 꺼냈다. 내가 고3 일 때도 엄마는 책상에 앉아 공부 중인 내 뒤에 와서 이불을 펼치며, “공부는 그만하고, 얼른 자라”고 채근하곤 했었다.


“엄마. 그때 학교에서 엄마가 선생님이랑 학부모 면담할 때, ‘우리 아들은 하루에 8시간씩 잡니다’고 하는 바람에 내가 선생님한테 엄청 혼났었잖아요. 생각나요?”

그러자 이번에는 엄마가 ‘허허허’ 하고 웃었다. 그리고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 우리 아들, 공부만 열심히 합니다~’ 그렇게 말했어야 되는데.”


엄마의 위트 넘치는 반응에 놀라움이 밀려왔다. 뇌출혈 이후 무너졌던 인지기능들이 아주 조금씩이지만, 차츰 회복되어 돌아오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3.

오늘따라 30분의 면회시간은 더 빠르게 지나갔다.


요양보호사가 시간이 다 되었다는 신호를 주었다. 아쉬웠지만, 다음 가족이 기다리고 있기에 미적거릴 수는 없었다.


“엄마, 우리 이제 갈게요. 다음 주에 또 올게~~.”


그러자 여전히 무표정한 엄마의 얼굴이 오늘따라 유난히 슬퍼 보였다. 내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Photo credit: unsplash.com/@sidphoto



4.

인지 기능이 돌아온다는 건, 지금 자신의 상태를 더 또렷이 인식하게 된다는 뜻이지 않을까?


예전의 엄마는 총명했고, 활달하고, 밝은 분이셨다. 그런 엄마가 지금, 하루 종일 요양원 벽을 바라보며 누워있는, 자신이 놓인 현실을 선명하게 인식하게 된다면 그것은 얼마나 절망적이고 서러운 느낌일까.


돌아오는 길 내내, 나를 아련하게 쳐다보던 엄마의 마지막 눈빛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으면서 슬픔이 물밀 듯 밀려왔다. 오래 같이 있어드리지 못하는 미안함, 엄마를 모시지 못한다는 죄책감과 함께...


엄마가 나를 더 이상 알아보지 못할 때는, 엄마가 나도 모르게 이미 조용히 나와 이별을 한 것 같다는 느낌에 눈물이 났었다. 그런데 오늘은 엄마가 나를 또렷이 알아보는 것 같아서 또 눈물이 났다.


엄마가 자신의 지금 상태가 절망스럽고 힘겹다고 자각할까 봐 마음이 아리고, 또 그로 인해 아들을 원망이라도 할까 봐 두려웠다.


이래도 슬프고, 저래도 슬픈 마음이다.


(2025년 7월)



Cover Image: unsplash.com/@slrnc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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