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웃게 만든, 양복점의 추억
며칠 전, 이른 아침 여섯 시가 조금 지난 시각. 휴대폰이 울리고 화면에 ‘엄마’라는 이름이 떴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엄마는 이미 오래전부터 전화를 직접 사용하지 못하시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생긴걸까?’
서둘러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로 요양보호사와 엄마의 음성이 들렸다. “어르신~, 아드님이에요.” “누구라고?” “아드님이요. 전화에 대고 말씀해 보세요.”
나는 대충 상황을 눈치챘고, 전화기에 큰 소리로 외쳤다.
“엄마~ 엄마!”
하지만, 엄마는 무슨 일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이윽고, 요양보호사가 직접 나에게 이야기했다. 엄마가 며칠째 잠을 거의 이루지 못하고 아들을 자주 찾으신다고, 그래서 통화라도 시켜드리면 좋겠다 싶어 전화를 걸었다는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다시 한번 전화에 대고 엄마를 크게 불러보았다.
"엄마~!"
그러자 한참 만에 내가 아들임을 알아차린 엄마가 조용히 말했다.
“나 좀 와서 데리고 가라.”
순간, 마음이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 오늘은 내가 회사에 가야 해요. 토요일에 엄마 보러 갈게요.”
그러자 엄마는 내게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요양보호사에게도 “번거롭게 해서, 괜히 실례를 해서 미안합니다”라고 하셨다. 세상에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엄마의 마음은, 기억이 흐려진 지금도 변함이 없나보다.
전화기 너머로 엄마가 미안하다며 연신 사과하는 소리를 듣자니 마음이 더 아팠다.
그날 이후로 나는 빨리 주말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엄마의 상태가 또 그 사이에 더 나빠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엄마의 상태는 날마다 다른 듯하다. 기억이 비교적 또렷한 날이 있고, 그렇지 않은 날이 있다. 불안과 우울이 엄습하는 날도 있고, 감정적으로 평온한 날도 있다.
면회실에 들어서는 엄마에게, 아직 날이 덥지만 절기로는 이미 가을이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엄마는 입을 동그랗게 오므리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집에 있던 엄마의 긴 옷의 행방을 물었다.
"그거 내가 다 챙겨놨어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러자 엄마는 “네가 어떻게 그걸 갖고 있냐?” 하시며 또 한 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엄마의 그런 표정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엄마. 엄마가 쓰던 오래된 미싱 있죠? 그것도 내가 챙겨놨어요."
"옛날에 아빠가 양복점 할 때부터 쓰던 크고 묵직한 가위 알죠? 그것도 내가 갖고 있어요."
엄마는 내 말에 연신 놀라는 표정을 지으시더니 갑자기 잡고 있던 내 손을, 기분이 좋은 듯 위아래로 흔드셨다.
낡고 오래된 물건들을 함께 추억해 주고, 소중하게 생각해 줘서 고맙다는 뜻인 것 같았다.
내가 어릴 적 아빠는 양복점을 했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길가에 있는, 가게가 딸린 집에 살았다. 양복점 쇼윈도, 가게 한편에 놓인 커다란 재단용 책상, 그리고 그 위에 놓여있던 무거운 가위와 초크, 바늘, 골무와 나무곡자 등이 생각난다.
그 풍경을 떠올리며 엄마가 기억할 만한 옛날 일들을 더 생각해 냈다.
"엄마. 옛날에 우리 양복점에 괘종이 달린 벽시계가 있었잖아요. 그때 엄마가 그 시계의 바늘을 돌려가면서 나한테 시계 읽는 법도 가르쳐줬었어요."
엄마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듣는 아이 같은 표정을 지으신다. 그럴 때의 엄마는 눈이 반짝이며, 예전의 총명함이 다시 돌아오는 듯한 느낌이다.
"생각해 보면 엄마가 나한테 공부하는 방법도 참 많이 가르쳐 주셨었네."
내가 어릴 때 엄마는 '학교에 가면 선생님 말씀을 한마디도 놓치지 말고 다 잘 들어야 한다‘고, 심지어 ’선생님이 기침을 하시면 그것까지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고 했었다.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잘 따랐고, 집에 돌아오면 그날 선생님이 몇 번 기침하셨는지까지 엄마에게 보고하곤 했었다.
그 얘기를 들려주니 엄마가 살짝 웃는다. 기억은 희미해졌지만, 엄마의 웃음만은 여전히 환한 것 같다.
“모든게 다 엄마 덕분이에요. 고마워요, 엄마.”
엄마는 꼭 잡고 있던 내 손을 다시 한번 위아래로 살며시 흔들었다.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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