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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태진 Dec 16. 2019

제발 지시를 좀 해 주십시오

Lesson #2. 자기 주장

서현이는 어렸을 때 돌멩이를 무척 좋아했다. 항상 주머니 안에는 어디서 주워왔는지 돌멩이가 몇 개씩 들어있곤 했다. 하루는 서현이가 조그만 손바닥 위에 그저 그래 보이는 돌멩이 몇 개를 얹어 놓고는 “아빠, 어느 게 제일 좋아?” 하고 물었다. 내 눈엔 그냥 다 평범해 보이는 돌멩이들이었지만, 굳이 어느 것이 좋냐고 묻기에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음… 이거.” 그랬더니 이번엔 왜 그게 제일 좋냐고 묻는다. “글쎄?”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서현아, 그럼 너는?” 대답 대신에 거꾸로 서현이에게 물었더니 서현이가 다른 돌멩이 하나를 가리키며 그게 좋은 이유를 대기 시작했다. ‘이건 여기가 울퉁불퉁한 게 재미있게 생겼고, 또 자세히 보면 여기엔 신기한 무늬가 있고, 색깔이 어떻고 촉감이 어떻고’ 등등… 나는 하나도 댈 수 없었던 이유를 줄줄이 대길래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고 깜짝 놀래기도 했다. 그리고는 ‘이게 서양식 교육과 한국식 교육의 차이 때문인가?’라고 궁금해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미국에 살면서 서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무렵이었다.




대학원을 마치고 제일제당(CJ의 전신)에 연구원으로 갓 입사했을 때, 본사 개발팀에 계시던 모 차장님이 나를 눈여겨보면서 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시곤 했었다. 그분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나는 멍청한 대답을 안 하려고 무지 애를 썼었는데, 종종 선문답 같은 질문을 내게 던지고는 빨리 답해보라는 듯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볼 때면 그분이 무척이나 밉고 원망스러웠다. 삼십 대 초반까지 대학과 대학원, 직장생활을 모두 한국, 한국 학교, 한국 기업에서 한 나로서는 ‘예,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객관식 내지는 단답형이 아닌 모든 질문은 본능적으로 불편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제 외국 생활을 십 년째 하고 있지만, 가끔 워크숍이나 교육 같은 것을 참석했을 때 진행자가 정답 없는 질문을 던지면서 의견을 말해보라고 강요(?)하면 불편해지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점점 사람들을 이끌며 일을 해야 하는 입장에 서다 보니 스스로 생각하는 것, 질문하는 것, 생각의 틀을 깨는 것, 그리고 자유로운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는 것의 중요성을 갈수록 절감하게 된다. 사람들을 이끌며 일한다는 것은 사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힘을 빌어 일이 처리된다는 것이다. 내가 모든 일의 세부적인 프로세스를 다 알 수도 없고 돌아가는 모든 상황을 실시간으로 다 파악하고 있기도 힘들기 때문에 내가 모든 일을 일일이 다 지시할 수도 없다. 그래서 나와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내 지시에만 의존해서 수동적으로 일하게 되면, 결국 어디선가는 일이 ‘펑크’가 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직원들에게 ‘능동적으로 생각하라’ ‘질문하라’ ‘사고의 틀을 깨라’ ‘자기 주도적으로 일해라’고 여러 번 말한다고 해서 쉽게 바뀌는 것은 아니다. 워낙에 그것이 습관이 안된 탓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당신을 어떻게 믿고?’라는 회의적인 시각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함께 일하는 리더가 믿을 만한 사람이어서 나중에 솔직한 자신만의 의견에 대해 부당하게 질책하거나 자기의 공을 가로채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기 전에는 더욱 그런 것 같다. 어찌 보면 그건 리더의 책임이고 숙제이기도 하다.

한국지사에 부임해 온 첫해에 이 부분에 대한 시행착오가 많았다. 한 번은 회사에서 관리자급 직원들을 모아 이틀간 리더십 관련된 워크숍을 진행하기로 했다. 각 부서에서 선발된 직원들로 준비위원회를 꾸리고 임원진 중 한 명이 ’스폰서‘를 맡기로 했는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가 그 역할을 맡게 되었다.

준비위원회가 첫 번째 회의를  위해 모인 날. 내가 먼저 인사말을 하고, 전체적으로 행사의 취지에 대해 설명한 다음에 직원들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내 역할은 프로젝트 리더가 아니라 스폰서였기 때문에, ‘나는 스폰서답게, 직원들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고 계획을 세워갈 수 있게 도와주기만 해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직원들이 스스로 의견을 도출하는 것을 짐짓 지켜보려 할 뿐이었다. 그런데 한 바퀴 돌아가며 팀원들이 자기소개를 하고 나니 어색한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직원들의 시선은 계속 나에게로 돌아왔다.

“여러분, 제 역할은 스폰서일 뿐입니다. 이번 행사는 여러분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해서 기획해 주시고, 저와 임원진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그것만 저에게 알려주세요.”

하지만 이야기는 좀처럼 앞으로 나가지가 않는 듯했다. 급기야 회의 중간에, 가장 연장자인 한 직원이 그나마 용기를 내서 나에게 직언(?)을 했다.


“그러지 말고, 제발 지시를 좀 해 주십시오.”



교육의 차이인지 문화의 차이인지, 아니면 두 가지가 결국은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 동남아에서 일하면서도 비슷한 상황을 자주 접하곤 했다. 분명히 똑똑하고 충분히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직원들임에도 자발적으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고민하기보다는 상사의 지시만을 기다린다거나, 해결책을 스스로 찾으려 하더라도 그 생각의 범주가 이미 알려진 사실과 현상들을 절대 벗어나지 않으려는 경향을 많이 보았다. 한국에 돌아온 초창기에 겪었던 비슷한 과정을 말레이시아에서도 겪어야 했다.


직원들이 나에게 문제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나는 항상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그의 생각에 대해 되물었다. 그럴 때마다 직원들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상사인 나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지시사항을 전달받으려고 왔는데, 원하는 건 주지 않고 거꾸로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으냐고 되물으니 황당할 듯도 싶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직원들도 차츰 나에게 와서 보고를 할 때는 상황에 대한 보고와 함께 자신들의 생각도 정리해서 함께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럴 때면 나는 더 나아가서 한 가지 접근법만이 아니라, 최소한 두 가지 이상의 접근법을 생각해서 오라고 요구하곤 했다. 나중에 내가 말레이시아를 떠날 때, 한 임원은 나에게 씽긋 웃으며 “태진, 너한테 생각하는 법에 대해서 많이 배웠어. 특히 두 가지 접근법 (two options)에 대해서 말이야. 고마워.”라고 했다. 괜스레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지려고 했다.




내가 하는 일을 내가 정할 수 있다면 직장생활도 더 할 맛이 날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능력을 인정받을수록 업무에 대한 자유도는 늘어나는 법이다. 지시를 받아 수행하는데만 익숙해지고 스스로 생각하는 연습을 게을리하게 되면, 점차 업무의 주체가 아니라 도구 취급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생각하는 힘도 근육처럼 자꾸 써서 길러야 한다.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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