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함태진 Mar 16. 2023

양자경의 아카데미상 수상을 보며 드는 생각들

2023년 3월 15일 (수요일), 흐림

예전에 함께 일했던 말레이시아 동료들이 최근에 난리가 났다. 며칠 전에 있었던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우리 양자경(Michelle Yeoh) 누님이 아시아 여성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양자경은 중국인이 아니라 말레이시아인이었다. 이번에 처음 알았다.) 뉴스를 검색해 보니 올해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이 영화가 그야말로 싹쓸이를 했다. 11개 부문 후보, 7개 부문 수상. 영화 제목도 특이하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호기심에 영화를 찾아서 보았는데, 난리난리 그런 난리부르스가 없다. 말도 안 되는 온갖 기괴한 상상력이 총동원된, 황당무계한 B급 감성이 넘쳐나는 SF 판타지 가족드라마다. 보는 내내 작가의 상상력에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것이 예전에 아들내미의 추천으로 보았던 애니메이션 시리즈 <Rick and Morty>의 실사판 같은 느낌도 든다. 물론 영화가 만화보다 훨씬 더 큰 울림이 있다.


아시아계 여배우 양자경의 수상은 그동안 다양성이 부족했던 아카데미상의 폐쇄성에 대해 다시 한번 주의를 환기시키는 모양이다. 사실 이 상은 그 세계적 권위에 비해 어지간히 폐쇄적이긴 했다. 오죽하면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오스카는 국제 영화제가 아니다. (미국) 지역 영화제일 뿐(The Oscars are not 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They’re very local.)”이라고 일침을 날렸을까. 백인 외의 다른 인종 사람들에게 인색한 점을 비판하며 ‘백인들만의 잔치’라는 의미의 #OscarsSoWhite라는 해시태그가 한동안 유행하기도 했었다. 하긴 아카데미의 100년 가까운 역사에서 백인이 아닌 배우가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이 지난해가 처음이었다고 하니 좀 심하긴 심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금과 같은 세계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커다란 이유 중의 하나도 따지고 보면 다양한 인종이 섞여서 만들어 내는 다양성의 시너지 덕분이었을 텐데 아카데미에서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다양성이 존중받지 못했다는 것은 다소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다양성(Diversity)이 성장과 발전을 위해 중요하다는 것은 어쩌면 자연의 기본섭리이기도 하다. 생물의 경우에도 특정한 종의 유전적 다양성이 낮아지면 그 종은 멸종될 확률이 높아진다. 근친교배를 통해 유사한 유전자집단끼리만 교배하다 보면 유전병이 생길 확률이 높아지는 것처럼 다양성은 생물이 건강하게 번성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다. 사람도 비슷한 경험과 생각을 가진 이들끼리만 계속 교류하면 새롭고 발전적인 것이 나오기 힘든, ‘그 나물에 그 밥’이 되기 십상이다. 다양한 생각, 다양한 경험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서 상호작용을 하고 융합할 때에야 비로소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들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발전과 진보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아카데미를 석권한 이 영화가 한 명이 아닌 두 명의 감독, 그것도 동양인과 서양인 젊은 감독들의 공동작품이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아마 두 감독의 서로 다른 다른 경험과 세계관이 뒤섞인 덕분에 더 독창적이고도 특별한 영화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면 요즘 세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chatGPT도 마찬가지다. 이 기술의 근간은 컴퓨터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구사할 수 있게 해주는 소위 ‘거대언어모델 (Large Language Model, LLM)’이라는 것인데 이것은 컴퓨터 과학자들끼리만 모여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것이다. 컴퓨터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언어를 연구하는 언어학자들과 함께 일을 했기에 이토록 놀랍고도 전에 없던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


다양성과 융합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많은 기관과 단체들은 이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예컨대 다수의 글로벌 기업들은 사내 구성원들의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인력의 채용이나 훈련단계에서부터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 ‘Chief Diversity Officer (최고 다양성 책임자)’라는 직책을 두는 회사들도 있다. 신약을 개발하는 회사들은 임상시험단계에서 환자들의 구성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교육기관들은 학생들을 뽑을 때 성별, 국적, 인종, 배경 등에서 다양성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학교에서 제공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다양한 학문이 합종연횡 융합될 수 있도록 다학제 교육(interdisciplinary approach)을 적극 장려하기도 한다.


다양성과 융합은 조직과 사회 수준에서 중요한 것은 물론이고 개인 수준에서도 점점 중요해질 것이다. 특히 본인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다양한 경험과 사고를 습득하고 이들을 자기 안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융합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언가를 새로 배우러 학교를 다시 다닐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전혀 익숙하지 않은 종류의 책을 읽고 전혀 가보지 않은 곳을 가보는 것도 방법이지 싶다. (딴짓할 때 쓰기 좋은 핑계이려나?)


그나저나 양자경 누님, 수상을 축하합니다.

이전 17화 경력이 없는 사람도 누군가는 뽑아줘야 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