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5일 (목요일), 맑음
미국 출장 갔다가 돌아오는 귀국길. 비행기에 탑승하는데 승무원이 표를 확인하며 말한다.
"들어가셔서 왼편입니다."
하지만 피곤해서였는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어 비행기 뒤편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자 이내 한 승무원이 급히 나를 뒤쫓아 온다. 에구머니나...
“손님, 제가 자리로 직접 모시겠습니다.”
쫓아온 승무원은 내 가방을 받아 들며 말했다. '뭐 그럴 것까지는 없는데' 하면서도 나는 순순히 가방을 내어주고 승무원의 뒤를 얌전하게 따라갔다. 그런데 앞장서 가던 승무원은 나를 일등석으로 안내하는 것 아닌가.
"엥? 내 자리가 여기라고요?"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럴 리가 없다는 듯 비행기 티켓의 좌석번호를 다시 확인했다. 2J. 내 자리가 맞았다. 헐...
승무원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맞습니다."
"음... 예약이 잘못되었을 리는 없고... 제 자리가 업그레이드가 된 건가요?“
승무원은 해당 항공편의 경우 일등석 좌석까지도 비즈니스석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사실 나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유가 뭐가 중요한가. 내 자리가 일등석이 맞다는데. 뜻하지 않은 행운에 나는 무척 신이 났다. 야호~!
대충 짐을 내려놓은 다음, 나는 다른 손님들이 더 타기 전에 얼른 기념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셀카를 찍으려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때 아까 그 승무원이 어느새 다가와 웃으며 물었다.
“제가 찍어드릴까요?"
“아, 그래 주시겠어요?”
나는 좀 부끄러웠지만 핸드폰을 그에게 건넸다. 승무원은 내가 멋쩍은 표정을 보여서인지 그럴 필요 없다는 듯 친근하게 말했다.
”저 원래 이런 사진 종종 찍어드립니다 ㅎㅎㅎ“
덕분에 나도 긴장이 좀 풀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더 이상 쭈뼛거리지 않고 손으로 'V'자도 그려보고 이런저런 포즈를 취했다. 승무원은 사진이 잘 나오는 각도를 이리저리 찾아가며 사진을 여러 장 찍어주었다. 그 승무원의 스스럼없는 태도가 참 고마웠다.
하지만 그날 일등석에서 일하는 다른 대부분의 승무원들은 나를 극도로 절제된 공손함으로 깍듯하게 대했다. 무슨 회장실 비서 같은 느낌이랄까? '일등석 손님에게는 아마 각별히 더 조심스러운 것이겠지?' 나는 혼자 그렇게 생각했다. 공손함으로 두껍게 무장한 승무원들의 태도는 대단히 친절했지만 다소 경직되고 로봇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서비스를 받을 때면 나도 역시 무의식적으로 약간 경직되고 기계적인 예의바름(?)으로 그분들을 대하고 있었다. 나에게 편하게 말 걸어주던 그 승무원한테만 빼고.
사람의 뇌 속에는 상대방을 따라 하게 만드는 거울신경(mirror neuron)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방의 행동이나 태도를 무의식 중에 따라 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나를 어려워하는 사람은 나도 어려워하고, 나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는 사람에게는 나도 친근한 마음이 드는 것은 우리 뇌 속의 거울신경이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득 오래전에 한 어른으로부터 들었던 충고가 생각났다. 퇴임한 고위공직자이셨는데 나는 우리 회사의 고문으로 위촉된 그분과 주기적으로 함께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정보와 조언을 듣곤 했었다. 그분을 뵐 때마다 나는 당연히 극도의 예의를 갖춰서 그분을 대했었다. 그렇게 한 1년 정도 지났을 때였다. 그분이 나에게 한마디 하셨다.
“자네는 공손한 것은 좋지만 자신을 조금 더 오픈하면 더 좋을 것 같아.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기가 쉽지 않을 걸세.”
1년 동안 같이 밥도 먹고 가끔 반주도 한잔씩 함께 했으면 조금 더 자신을 열어 보이고 좀 더 친근하게 굴 수도 있었을 법 한데,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하고 늘 반듯하게 공식적이고 예의 바르기만 한 모습을 보이니 좀 답답하고 딱하게 생각되셨었던 것 같다. ‘이 친구 이런 식으로 사회생활해서는 성공하기 쉽지 않겠는데?’라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른다.
Google 본사에서 인사업무를 한 적이 있는 황성현 퀀텀인사이트 대표에 따르면 한때 Google이 전 세계 인사 담당자들을 모아서 한 가지 재미있는 주제의 연구를 시킨 적이 있다고 한다.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인들이 글로벌기업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 소위 '대나무 천장(bamboo ceiling)'이 생기는 이유를 알아보게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도출된 결론 중의 하나가 의미심장하다. 바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인들에게 있는 '체면을 중시하는 (saving face) 문화'가 그 원인 중의 하나로 지목되었다는 것이다.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은 체면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기 마련이다. 체면을 잃지 않으려고 하다 보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약한 모습이나 부끄러운 모습 등은 최대한 보여주지 않고 감추려고 하게 된다. 결국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온전하게 보여주기보다는 가꾸어지고 꾸며진 모습 만을 보여주게 된다.
그 결과는? 내가 마치 가드를 잔뜩 올린 권투선수처럼 상대방을 향해 철벽을 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되면 상대방 역시 무의식적으로라도 나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으려고 하게 된다. 나를 공식적이고 피상적으로만 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나는 주위 사람들과 진심 어린, 깊은 관계를 형성하기가 어려워진다. 그저 형식적인 관계에만 그칠 뿐이다. 형식적이고 피상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지지해 주거나 옹호해주지 않는다. 주위에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은 직장에서나 개인 생활에서나 불행한 일이다.
나름 글로벌하게 커리어를 키워온 사람이라고 자부해왔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도 어지간히 체면을 중시하는 동아시아 문화가 뼛속 깊이 자리 잡고 있었던 모양이다. 상사는 물론 부하직원 그 누구에게도 절대 말을 놓지 않고 깍듯이 존댓말을 쓰면서 내 딴에는 '수평적 문화'가 몸에 배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내가 상대방을 깍듯이 대하는 만큼 상대방도 나를 깍듯하게 대해 달라는,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였을지도 모른다. 그럼으로써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속내를 내 보이지도, 곁을 내주지도 않았던 것이다.
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선배 한분이 나를 하도 어려워하시는 것 같기에 "선배님, 부디 편하게 말씀 좀 놓으십시오"라고 했지만, 이분은 여전히 나에게 “함대표, ~~ 했어요?”하며 좀처럼 나와의 간극을 좁히지를 못하셨다. 그래서 내가 대뜸 “형, 우리 이제 좀 편하게 지내요.“라고 했더니, 이 분 눈 동그래진다. 그리고는 잠시 후에 환하게 웃으며 ”어, 그래 그러자“라고 그제야 편하게 말을 건넨다. 갑자기 우리 사이가 확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이 다가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철벽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좀 내려놓으니 주위에 점점 더 좋은 사람들이 많아지는 느낌이다. 행복하고 기분 좋다. 이젠 좀 허술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도 스트레스를 덜 받으려고 노력한다. 내가 뭐 그리 대단한 사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