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캔버스 삼아.

거창하지 않더라도.

by Eloquence
그때부터 나는 집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렸다.
감히, 뛰어난 감각을 소유하지도 않은 내가
예술적 감동을 주는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
내가 받았던 예술적 감동을 제일 가까운 배우자에게 전달하고,
더 나아가 신혼집을 다녀간 단 한 사람에게라도 전해졌다면
그것만으로도 공간을 통한 예술적 감동의 선순환이 성공한 게 아닐까.





대학 입학 때문에 경기도에, 취업으로 서울에 살게 되면서 타지살이는 스무살 때부터 시작됐다.

짧게 산 집도 있지만, 내가 고른 집에 한번 살기 시작하면 기본 1~2년은 살았고 5년 넘게 산 집들도 있다.

보통 이사하면 길게 사는 편이지만, 워낙 서울에서 거주한 세월이 길어 이사 경험이 꽤 쌓였다.

대학 기숙사, 대학 앞에 있는 원룸, 이모가 사는 원룸, 친구 친척이 외국에 있는 동안 잠깐 살았던 아파트

그리고 고시원, 주택, 원룸, 오피스텔, 아파텔(아파트+오피스텔)까지 안 살아 본데가 없다.

층수도 다양했다. 반지하부터 7층, 12층, 24층 그리고 현재 17층까지..

그동안 참 탈도 많고, 추억도 많았으며 얻은 질환도 있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고, 행복한 순간도 보내며 자연스럽게 집과 동네 분위기를 보는 안목이 길러졌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20대 중반쯤에 1년 몇개월 살았던 반지하 주택만 빼고는 모두 풀옵션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가구와 가전제품, 벽지, 인테리어를 경험할 수 있었고 나의 시선이 조금씩 달라졌다.


그중 가구는 현재 살고 있는 집에 온 뒤로 부쩍 관심이 커졌다.

카페에 가더라도 가구가 눈에 들어온다.


아직은 모르는 것도 많고, 안목도 부족하지만 관심이 아예 없던 예전의 나에 비하면 큰 변화다.

브랜드와 상관없이 소파와 식탁, 소파 테이블은 무엇에 중점을 두고 봐야하는지 직접 사용하면서 배웠다.

동시에 나의 취향도 알게 됐다.


나름의 예행연습을 하던 중, 신기하게도 결혼이 내 인생에 들어왔다.

예비신랑도 마음에 들어하는 범위 내에서 나의 취향을 집에 표현하기로 했다.

그때부터 나는 집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렸다.


지금은 아직 초기 작업 중이다.

초기 작업은 '평소 생각했던 거실의 방향성을 가구배치에 녹여내고, 나만의 취향과 감각을 표현해보기'이다.


무난하면서도 너무 흔하지 않은 가구와 유니크한 가구를 선택했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재질과 견고함, 관리까지 갖춘 가구를 선택했다.

동시에 집과 어우러질만한 것을 선택했다.


초기작업을 하다보니 가전제품과 식기류 등 집에 들이는 모든 것들에 눈길이 갔다.

가구는 색감과 모양, 재질 하나하나가 작품이다.

식탁 다리, 의자 등받이 모양, 다채로운 색 등등 모든 게 작품같다.

그런데 알고보니 식기류와 가전제품, 타올 등에도 예술이 있었다.

색감과 쉐입, 감성이 매력적인 것들이 많았다.

한 끗 차이로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들이 있었고, 한눈에 보기에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들도 있었다.


어느새 나는 모든 것들을 예술적으로 바라보며 하나하나 스케치를 하고, 색을 칠하고 있었다.


가구나 오브제로 자신만의 개성과 감각을 녹여낸 공간들을 보며 작품이라 느끼며 예술적 감동을 받았는데,

내가 그 예술적 감동을 주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감히, 뛰어난 감각을 소유하지도 않은 내가 예술적 감동을 주는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

자신없지만 용기내어 해보고 싶다.


내가 받았던 예술적 감동을 제일 가까운 배우자에게 전달하고,

더 나아가 신혼집을 다녀간 게스트 중 단 한 사람에게라도 전해졌다면

그것만으로도 공간을 통한 예술적 감동의 선순환이 성공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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