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 자체만으로 존재감이 크지만,
어떻게 배치하냐에 따라 완전한 주인공이 될 수 있고 조연이 될 수도 있다.
나만의 감각을 녹여내면 가구는 또 다른 옷을 입는다.
그렇게 가구와 공간의 조화가 만들어진다.
시선을 끄는 그림 앞에 오래 머물듯이,
가구와 공간의 시선을 사로잡는 조화로운 광경은 중요하다.
문득 누군가가 만든 것이 아닌,
내가 만든 가구와 공간의 조화를 바라본다면 어떨지 궁금했다.
(해당카페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어느 공간이든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곳이 일관되어 있다면, 그것이 요즘 내 취향이며 관심사다.
마음이 향하는 곳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지표다.
특히 혼자 갈 때 그리고 낯선 곳에 갈 때 더 확실하고, 깊이 알 수 있다.
요즘의 나는 어디를 가도 가장 먼저 가구에 눈길이 간다.
전 글에 적었듯이, 현재 살고 있는 집에 이사 온 뒤부터 그랬다.
가구에 관심이 커졌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확신한 순간은 나의 첫 번째 시선이 향하는 곳을 인지했을 때다.
아직 모르는 것도 많고, 안목도 부족하지만 가구를 향한 관심이 전보다 많이 커졌다는 건 확실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알게 된 것이 있다.
가구에 공을 들인 매장이나 팝업이 많다는 것이며, 가구에 남다는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가구의 역할은 생각보다 컸다.
어떤 업종이든 매장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했으며, 그곳만의 매력을 부각했다.
가구만 봐도 이곳의 색이 무엇인지 가늠할 정도였다.
이렇게 공간과 가구의 조화를 구경하는 일이 흥미로웠다.
마음에 드는 조화가 많았으나 하나만 꼽아보자면, 성수동의 어느 카페였다.
(고르느라 애먹었다)
그곳은 서울 성수동 외 다른 동네에도 지점이 있고 수원에도 있다고 한다.
지점마다 분위기가 조금씩 다르다는데, 방문했던 성수점은 딱 하나로 정의해서 말할 수 없었다.
층마다 색이 완전히 달랐다.
층별로 컨셉을 다르게 한 카페들을 몇몇 봐왔지만, 그 카페는 달랐다.
완전히 다른 카페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층마다 가구의 색감이나 배치, 조명 조도까지 차이가 커서 하나의 카페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지하 1층부터 4층까지 카페이며 그 사이 3층만 편집샵이었다.
공간과 가구의 조화가 인상적이었던 곳은 2층과 지하 1층이었다.
카페가 맞나 싶을 정도로 가구쇼룸이나 가구 전시회에 온 듯했고, 누군가의 집에 놀러 온 기분도 들었다.
곳곳에 놓인 큰 소파, 한켠에 작품처럼 놓여 있는 스피커, 다양한 크기의 테이블, 평상 위의 소파, tv앞에 놓인 소파가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나열해 놓으니 더 확실하게 와닿는다.
그곳은 카페보단 집 또는 가구쇼룸에 더 가깝다.
그런데도 그 카페는 카페로써 자리 잡고, 유명세까지 얻고 있다.
틀에서 벗어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소파와 평상이었다.
처음에는 소파가 시선을 사로잡은 이유가 디자인이나 색감이 독특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다시 들여다보니, 그 이유가 아니었다.
시선을 사로잡는 주인공이 될 만큼 소파는 독특하지 않았다.
진짜 이유는 배치방식이었다.
그곳의 소파는 꼭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았다.
새로운 자리를 찾았으며, 그 자리에 당당히 자리하고 있었다.
좌석 간 넓은 간격도 한몫했다.
카페 매출보다는 공간과 가구와의 조화에 더 심혈을 기울인 듯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더 큰 매출을 불러왔다.
넓은 간격으로 인해 소파는 바다의 섬처럼 보였고, 덕분에 소파의 쉐입, 색감, 구조에 더 눈길이 갔다.
카페 내부를 보는 게 아니라 소파라는 작품을 감상하는 것 같았다.
평상은 지하 1층과 2층의 유일한 공통점이었다.
단을 하나 올린 것만으로도 평상의 느낌을 주는 공간도 있었고, 온전히 평상의 모습을 한 곳도 있었다.
어떤 모습의 평상이든 평상 위에 있는 소파에 앉으면,
또 하나의 공간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 들었고 편안하고 아늑했다.
그렇게 공간과 가구의 조화가 완벽하고 예술적인 곳에 머물러보니, 함께하는 이와 나만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어린 시절, 책상 밑에 들어가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느꼈던 기분이 다시 들었다.
그 카페에서 머물면서 생각했다.
가구 자체만으로 존재감이 크지만,
어떻게 배치하냐에 따라 완전한 주인공이 될 수 있고 조연이 될 수도 있다.
나만의 감각을 녹여내면 가구는 또 다른 옷을 입는다.
그렇게 가구와 공간의 조화가 만들어진다.
돌이켜보면, 실내 공간에는 모두 가구가 존재했다.
의자 하나가 놓여있더라도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그 공간에 머물 수 없으며 곧 죽은 공간이 된다.
시선을 끄는 그림 앞에 오래 머물듯이, 가구와 공간의 시선을 사로잡는 조화로운 광경은 중요하다.
시선을 사로잡는 가구와 공간의 조화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고 오래 머물게 하는 매력이 있다.
또 몰입도를 높여 그곳에 머무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도록 이끌어준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서 추억 하나를 만들었다.
문득 일상 속에서 가구와 공간의 조화를 향유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 내 집 안을 둘러보았다.
가구와 공간의 조화를 나도 만들고 싶었다.
누군가가 만든 것이 아닌, 내가 만든 가구와 공간의 조화를 바라본다면 어떨지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