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를 탈 일이 생겨서 런던 히드로 공항에 왔다.
아직 보딩 타임까지 시간이 남아서, 이 틈을 타 오랜만에 <게으른 디자이너의 AI 실험 일기> 다음 이야기를 써보기로 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lazydesignerai
공항 카페 주변은 온통 언어로 가득하다.
휴가를 떠나는 사람, 고향에 가는 사람, 출장을 가는 사람들…그 사이로 프랑스어, 독일어, 아랍어, 한국어, 그리고 영어가 동시에 들려온다. 그중 몇몇은 대화를 나누다가, 언어를 바꿔야 할 순간이 오면 망설임 없이 휙! 바꾼다. 언어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사람들을 보니 궁금해졌다.
언어를 바꾸면, 생각하는 방식도 함께 달라지는 걸까?
찾아보니, BBC Future에선 이중 언어 사용자들이 말을 할 때 모든 언어를 동시에 활성화하기 때문에 단어, 문법뿐 아니라 사고의 구조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참고 기사- https://www.bbc.com/future/article/20160811-how-the-language-you-speak-changes-your-view-of-the-world )
그렇다면… 이중 언어로 AI 프롬프트를 작성하면, 결과도 달라질까?
다시 글을 작성하던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게으른 디자이너의 AI 실험일기> 시리즈의 새로운 글들은 대부분 AI와 함께 쓰고 있다. 특히 두 가지 작업을 할 때 AI와의 협업(?)이 활발하다.
첫 번째, 브런치 글 리뷰하기
시리즈 초반에 만들었던 글쓰기 AI 어시스턴트, 호비 (Hobi)와 함께 브런치 글을 리뷰한다. 생각나는 대로 대강 적어둔 초안을 호비와 함께 리뷰하고, 글의 구조를 살펴보는데 - 생각보다 논리적으로 글의 흐름을 재정비해서 보여준다. 내가 한글로 프롬프트를 작성하면, 호비도 한글로 답해준다. 결과물에 원하지 않는 문장이 추가되거나 (할루시네이션), 전체적인 톤이 오글오글 거리는 경우가 있어서 수정이 꽤 필요하다.
두 번째 작업은, 디자인 픽션 구상하기
디자인 픽션 (Design fiction) 집필 작업을 위한 미래 시나리오 구상은 챗GPT와 함께 영어로 초안과 프롬프트를 작성 중이다. 영어가 더 잘 맞아서도, 편해서도 아니다. 오히려 영어가 생각을 더디게 만드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사용한 모국어, 한글은 생각과 언어 간의 전환이 쉬운 반면에, 감정이 앞서는 일이 잦다. 생각과 감정이 모두 들어간 글을 읽다 보면, 원하는 이야기 전달에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더 객관적으로 사고 구조에 집중할 수 있는, 외국어 - 영어를 선택했다. 생각과 언어의 전환이 더디고, 감정 표현도 서투른 언어 - 영어로 생각하고, 글을 쓰니까 참…답답하다ㅠ 그래도 새로운 균형을 찾아보려고 꾸역꾸역 써본다.
챗GPT랑 작업할 때는, 프롬프트 언어와 초안 언어를 영어로 통일하는 편이다.
한 가지 언어로 통일하는 게 예상 결과물과 실제 결과물을 비교하고 수정하는 데 편했기 때문이다. 초안 작성은 브런치 글을 호비와 작업하는 것과 비슷한데, 내가 제공하는 문장이 훨씬 더 거칠고 감정 표현이 건조하다. 그렇게 탄생한 초안에 원하는 속도감이나 감정의 깊이를 챗GPT랑 같이 조율하는 방식으로 작업 중이다.
그렇다면, 프롬프트 언어가 바뀌면 작업 결과물 퀄리티도 달라질까? 단순한 언어의 변환이 아니라, AI가 문맥을 이해하는 방식까지 바뀌는 거라면?
비슷한 질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나 보다. 찾아보니, AI 성능도 이중언어 환경에서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Cambridge University Press & Assessment의 보고서에서는 “AI는 다양한 언어 데이터를 학습할수록 사용자와의 상호작용이 더 풍부해진다”라고 설명한다 (출처 - https://www.cambridgeenglish.org/english-research-group/generative-ai-for-english/ )
그리고 Oxford와 Allen Institute 공동 연구팀의 PNAS 논문에선, 대형 언어 모델(예: GPT‑J)은 규칙 기반이 아니라, “유사 예시 중심 학습”을 통해 언어를 내재화하며, 이 과정은 인간처럼 유추(analogical)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한다. (출처 - https://www.eurekalert.org/news-releases/1083481 )
결국 언어를 바꿔 프롬프트를 작성하는 게, AI 입장에선 사고의 프레임을 바꾸는 일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 프레임을 정하는 사람은…
서툰 영어와 본능적인 한글 사이를 오가는 나?!
지금은 디자인 픽션을 영어로 만들고 있고, 원하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때까지, 영어와 한글을 오가며 - AI 어시스턴트에게 ‘이게 내가 말하고 싶은 거라고!’ 의견을 전하며 애쓰는 중이다.
단순한 번역은 아니다. 같은 이야기인데, 언어가 바뀌면 감정선도, 속도도, 분위기도 달라진다. 조율 과정에서 나도 조금씩 달라진다, 생각하는 방식, 문장을 전개하는 리듬, 감정의 높낮이까지.
언어가 뒤섞인 프롬프트로 작성한 디자인 픽션, 과연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