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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수 Oct 29. 2020

"남자가 왜 동방신기를 좋아해?"

동방신기는 내 안에 품은 열정이었다

“남자가 왜 동방신기를 좋아해?”     


나는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처음 그런 질문을 받을 땐 골치가 조금 아팠다. 이유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갖 표현을 써가며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했다. “노래 잘하고 춤도 잘 추고 외모도 출중하고 스토리도 있고…” 하지만 구차한 설명은 되려 약발을 떨어뜨렸다. 어느 순간 한 가지로 명쾌하게 대답해야 그 답변이 잘 먹힌다는 걸 깨달았다. 거듭되는 질의응답 속에서 나름 완성도를 높여나간 셈이다.


어째서 동방신기를 좋아하게 되어버렸을까? 나는 내 감정을 하나의 문장으로 정의하기 위해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그 끝에 내린 결론은 실력이었다. 모든 멤버의 가창력이 출중한 그룹, 그래서 반주만 틀어놓고도 스스로 화음을 채워 넣으며 곡을 완성해 나갔던 그룹. 동방신기는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아이돌의 모습과 가장 닮아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노래를 잘해서 좋다고 대답하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잘하는 건 알지만 그 정도로 열광할 일이냐는 것이다. 그럴 때면 왠지 속이 답답해진다. 단숨에 동방신기의 가창력을 입증하고 싶은데, 이를 위해 보여주고 싶은 영상도 한둘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한국곡을 들려줘야만 할 것 같고, 그러자니 동방신기의 진가가 드러나는 일본곡을 못 보여주는 게 아쉽고, 일본곡 중 좋은 곡이 한두 개가 아니라서 뭘 보여줘야 할지도 모르겠고…. 결국엔 하는 수없이 <Begin>이나 <Forever love>처럼 그들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무대 영상 링크를 보내주는 선에서 타협한다. 그래도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아마 이런 선택 장애는 앞으로도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더러는 내 성 정체성에 의문을 갖기도(?) 한다. 그럴 법도 한 게 나만큼 열정적으로 동방신기를 좋아하는 남자는 그들 주변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자 아이돌에게는 남팬이 희귀하다. 동방신기도 그걸 안다. 그래서 돔 콘서트 땐 “남팬이 있다면 소리를 질러보라”며 확인해보기도 한다. 자신을 향한 남팬들의 환호에 뿌듯해하는 유노윤호를 보면, 나는 마치 나의 팬이 생긴 것처럼 가슴이 벅차오른다.


나에게는 오타쿠 기질이 다분히 있다. 어떤 대상에 한 번 꽂히면 그걸 중심으로 나의 세계관을 재편한다. 인생의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건 물론이다. 가끔은 그 대상이 동방신기나 원피스가 아니라 수학이나 과학 같은 공부였다면, 예컨대 평생을 해파리 연구에 몰두해 노벨상을 수상(2008)한 시모무라 오사무 교수처럼 약간의 학문적 성취를 이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그게 아니니 이렇게 편하게 말하는 것이지만. 여하튼 동방신기가 내 인생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동방신기 라이브 투어 2018  ~ TOMORROW ~ 다큐멘터리 필름. 일본 내에서 폭 넓은 팬층을 보유한 동방신기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AVEX


어느덧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면서 시간의 흐름을 체감한다. 동방신기를 처음 좋아할 때만 해도 청소년이었는데(참고로 우리나라 청소년기본법상 청소년의 기준은 만 24세까지다), 이렇게 빨리 30대가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나와 함께 그들을 좋아했던 10대 소녀들은 이제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다. 아이를 낳은 친구도 있다. 그 사이 많은 아이돌이 등장하고 퇴장하기를 거듭했다. 나이 들어서도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함께 성장해 나간다는 것은 큰 행운이고 감사할 일이다.


30대가 되어서 안 좋은 점은 아이돌 팬으로서 입지가 좁아졌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아이돌 팬덤은 아무래도 10대 청소년이 중심이 된다. 기껏해야 그들이 성장해 30대가 되는 정도다. 서른 넘도록 아이돌 따라다닌다고 하면 주책이라며 눈치를 주는 사람도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 어른이 되면서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주식이나 부동산, 육아 같은 것들로 옮겨 간다. 대학 동기들과 노래방에서 <Rising sun>을 부르고, 동방신기 일화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일은 이제 좀처럼 없다. 나는 그렇게 내가 어른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일본 콘서트를 따라다니면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 그곳에서 동방신기는 정말 폭넓은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 또래 여성들은 물론이고, 60대 70대 어르신들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다. 나는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백발의 노인이 동방신기의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 뭔가 여전히 어린 시절의 꿈과 감성을 잃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부러워진다. 우리 부모님들도, 그리고 우리도, 저런 순수함을 잃지 않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내 어릴 적 꿈은 빨간 풍선을 타고 하늘 높이 날으는 사람
그 조그만 꿈을 잊어버리고 산 건 내가 너무 커버렸을 때
- 동방신기 <풍선> 가사 중


동방신기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이따금 과거로 소환된다. 그 노래를 처음 듣던 순간의 기억들, 그것과 얽혀있는 사연들이 나를 반긴다. 비록 지금은 세상에 치어 사는 평범한 30대가 되었지만, 동방신기가 존재함으로써 나는 20대에 품었던 꿈과 열정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다. 그들을 좇으며 분발했던 나날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있는 이유에서다.


동방신기가 좋아서, 내 인생은 더욱 아름다울 수 있었다. 물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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