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조사를 얼마나 철저하게 했는지 와본 곳 처럼 지도없이 돌아 다녔다. 트램을 타기 전에 혹시나 싶어 가판대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면 역시나 내가 아는 거기다. 저 아주머니는 같은 질문을 얼마나 많이 받았을까? 모르긴 몰라도 내가 살아온 날들 보다는 많겠지. 귀찮아 하는게 이해가 간다.
전 세계의 여행객들을 실어 나르는 듯한 6번 트램을 타고 반 옐라치치 광장으로 간다. 서양인들이 한국, 중국, 일본 사람을 구분하지 못하듯이, 나 역시 그들을 구분하지 못한다. 내 또래의 서양 여자에게 티켓 펀칭하는 법을 물었더니 본인도 여행자란다.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보고 싶은게 뭐냐고 물으신다면 찬란하게 빛나는 아드리아해라고, 그 다음은 새빨간 파라솔이 오밀조밀 서 있고 그 아래 싱그러운 과일들이 널려있는, 사람사는 냄새가 폴폴 나는 '돌라치 시장'이라고 답하겠다.
돌라치 시장은 과일이 참 싸고 맛있다. 여기에서 산 체리를 3일동안 가지고 다니며 먹었을 정도.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만 장사를 하므로 방문을 원한다면 일찍부터 움직여야 한다. 또 관광객들 보다는 현지인들이 장을 보는 시장으로, 물건을 살 의사가 없는데 이것저것 만져보고 사진을 찍는 행위는 굉장히 실례가 된다고. 빨간 파라솔이 예뻐 같은 데를 돌고 또 돌고 뱅글뱅글 돌다가 문득 파는 물건은 한국 시장하고 다를 것도 없다 싶었다. 여기나 저기나 다 사람사는 동네.
상큼한 체리를 먹으며 기분 좋게 자그레브 대성당에 왔다. 성당 앞 풍경이 참 예뻤다. 분수대에 앉아있던 독일 아저씨가 사진을 찍어주겠다 하여 기분 좋게 사진도 찍었다. 그런데 왜 눈물이 나는거지. 대성당에 들어가 기도를 하려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난다. 나는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다. 여기는 크로아티아고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해내고 있다. 자유롭고 행복하다. 그런데 왜. 신기한 경험이었다. 종교가 없는 나에게는 더더욱. 한바탕 울고나니 속은 후련하다.
웅장하고, 아름답고, 마음껏 기도할 수 있었던 자그레브 대성당에 우리 가족을 위한 초를 밝혀 두었다.
자그레브는 서울과 비교했을 때 특색있는 도시는 아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자그레브는 반나절 일정으로 하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여행이 어디 뭐를 보러 가는 거였던가? 도시 하나하나를 그대로 느끼고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싶어 첫째날과 그리고 마지막 날 자그레브에서 2박을 결정했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지금도 그러길 잘했다 싶다.
자그레브는 지도 없이 돌아다녀도 보고 싶은 것들을 충분히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작고 아담한 도시다. 많은 건물과 사람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다. 날이 너무 더워 조금 앉아 쉬고 싶었는데 공원을 발견했다. 로트르슈차크 탑 옆이었는데 이름은 아직도 모르겠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맥주 한 잔 마시니 살 것 같다.
누가봐도 한국인 여자아이가 혼자 앉아 있길래 같이 앉아도 되겠냐 물었다. 나이는 나보다 한참 아래인데, 독일에서 교환학생을 하다가 여행을 왔다고. 말하는게 어찌나 성숙한지 요즘 대학생들은 참 대단하다 싶다가도, 취업을 걱정하는 대목에서는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동생인양 안타깝다. '스물세살은 취업 보다는 너처럼 여행을 다닐 나이야. 너는 충분히 잘 하고 있어.' 말 해주고 싶었다.
잠깐 만났던 한국 동생과 헤어져 탑에 올랐다. 좋다. 이 주황색 지붕들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고 싶었다. 바람도 시원하고, 마음도 여유롭고, 빈 속에 마신 맥주 탓에 취기도 살짝 올랐다. 기분도 좋은데 이제 저녁을 먹으러 가볼까.
숙소에서 레스토랑을 추천받았다. 한국인들이 좋아한다는 트릴로기아. 송아지 스테이크를 시켰는데 한국에서 먹던 스테이크와 다를 바는 없다. 다른게 있다면 한국어를 하는 귀여운 서양인 종업원이 있다는 점. 'Thank you' 하면 매번 '천만에요!'를 외치며 돌아간다. 가끔씩 와서 '맛이 어때요?'를 묻고, '맛있어요'라고 한국어로 말해도 '감사합니다'라고 답하는 그의 센스. 크로아티아 레스토랑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종업원을 만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의 친절함에 감동스러웠고 소년같은 풋풋한 미소는 더더욱 감동스러웠다.
고백컨데 여행내내 매일 밤 맥주를 마셨다. 사실 혼자 여행하는데(둘이 여행해도 마찬가지겠지만) 밤 10시에 숙소에 들어가 할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초대형 조각피자와 맥주를 사들고 들어가 매일 밤 마셨다. 시내를 여행하는 시간도 좋았지만, 혼자있었던 그 시간들이 참 좋았다. 오늘도 그 시간을 즐기러 간다.
*<크로아티아에 왔다> 크로아티아 혼자 여행기를 읽어주셔서 무한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