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맞고 내가 틀렸다.
지난 주말, 친정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왔다. 남편은 그 사이 설거지, 바닥청소, 빨래를 해두었다. 잠들기 전 나란히 침대에 누워 "당신은 상위 '몇'프로 남편인것 같아" 라고 말했다. 굉장히 우수한 남편이라고 그를 칭찬을 해주고 싶었는데, 숫자로 퍼센트를 특정하기가 애매했다. 그러자 그는 냉큼 "상위 0.1% 남편이야" 라고 스스로 대답한다.
그가 스스로를 상위 0.1%라고 말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아내가 친정에 가 있는 동안 친구들 만나서 부어라 마셔라 하지 않음.
2. 술 좋아하는 사람 중에 본인같이 술 마시는 횟수가 적으며, 집에 재깍재깍 들어오는 사람은 없음.
3. 집안일을 잘함. 특히, 오늘은 세탁기와 건조기만 돌려 놓은게 아니라 건조기 속 빨래를 꺼내 전부 개서 제 자리에 가져다 놓기까지 함.
마지막 항목에서 '오!' 싶었으나 0.1%가 맞다고 이야기해주지는 않았다. 그러면 더 올라갈 데가 없으니까.
신혼초에는 매일같이 남편을 위해 사부작거리는 나와 달리 남편은 날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것 같았다. 어느 날에는 '당신은 날 위해 무얼 하냐고' 따져 물었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날 위해 매일 같은 노력을 해줄 수 없냐고 물었다. 예를 들면, 매일 아침 아내를 위해 영양제를 준비해주기. 또는 매일 저녁 퇴근하는 아내를 마중나오기. 지금 생각해보면 이기적이기 그지없다. 나의 요구에는 그는 없고, 나만 있었다.
학창시절 엄마는 매일 아침 공복에 먹어야 좋다며 눈뜨자마자 나에게 홍삼을 챙겨 먹였고,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돌아오는 딸의 귀갓길이 걱정돼 역시 매일 같이 버스 정류장에 마중나와 있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부모로부터 받았던 사랑의 형태 그대로를 남편에게 요구했던 것 같다.
그 때 마다 남편은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너를 사랑하고 있는데, 왜 정해진 방식으로 사랑을해야 하냐고 되물었다. 나는 당신 방식대로하면 아무리 애써도 사랑받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답했다. 만약 그 때 반대로 남편이 '우리 엄마는 매일 저녁마다 생선을 구워줬으니까 너도 날 사랑한다면 매일 저녁 생선을 구워줘, 그게 아니면 넌 나를 사랑하는게 아니야' 라고 말했으면 어땠을까?
아무튼 내가 나만의 논리를 주장하고 있을 때, 남편은 한결같이 집안일을 했다. 특히 내가 친정에 다녀오는 날이나 오랜만에 집에 돌아올 때는 집이 더 깨끗했다. 그는 "나는 당신이 항상 깨끗한 환경에서 기분좋게 지냈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그 때는 집안일은 원래 반반씩 해야하는거고, 내가 없이 본인 혼자 살더라도 당연히 해야하는 일인데 왜 꼭 날 위해 집안일을 하는것처럼 말할까 불만이 많았다.
그렇게 결혼생활 3년차가 되어가니 남편의 진가가 점점 더 드러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남편이 이렇게 '꾸준히, 착실하게도, 한결같이' 집안일을 해낼 줄 몰랐다. 친한 지인의 말에 의하면 부부가 각자 집안일을 몇 % 담당하는지에 대해 얘기하다보면 총 100%가 넘는다고 한다. 예를들어 스스로 집안일을 담당하는 비중을 평가하길 아내는 80%, 남편은 70%라고 답해 총합이 100%가 아닌 150%가 되어버린다는 것. 누구나 본인이 상대방보다 20~30% 집안일을 더 한다고 생각한다는 건데, 우리 집의 경우는 다르다. 남편이 60%, 내가 40%. 이것도 남편이 아니라고 하면 조금 더 조정이 필요할 수 있다.
사랑하는 감정과 느낌만 먹고 살던 결혼 초와 달리, 이제 사랑하는 서로가 들어와있는 일상에서 집안일을 꾸준히 (나보다 많이) 해내는 남편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이제와 보니 남편이 맞고 내가 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