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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짐니 Mar 28. 2021

집 밖에 나가고 싶은 사람과 집 안에 있고 싶은 사람

그가 산책 가자고 말하는 햇살 좋은 주말을 꿈꾼다.

 특별한 계획이 없는 주말에 남편은 주로 거실에서 TV를 보고, 나는 안방에서 책을 읽는다. 연애할 때는 그렇게 함께 밖으로 돌아다니던 남편인데, 딱 결혼을 하자마자 그는 집에만 있고 싶어 했다. 이유를 묻는 내게 '연애할 때는 밖에 나가야 너를 만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네가 집에 있으니까.'라고 답하는 그. 그의 단호한 대답에 할 말을 잃었다. ‘그러면 내가 나가면 따라 나올 거야?’ 물었더니 ‘아니, 나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올 거잖아 그때 만나면 되지’ 하면서 혀를 날름거리는 남편.


 나는 집에만 있으면 병이 나는 사람이라서 주말에는 어디든 나가서 보고 듣고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데, 남편은 하루 종일 집에서 푹 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결혼 초에는 이렇게나 성향이 안 맞는 줄 모르고 결혼을 했다고, 평생 남편은 주말에 잠만 자고 나는 우울증에 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나는 가족을 떠나보내며 생긴 트라우마로, 남편은 직장생활의 스트레스가 시발점이 된 공황장애로 각각 심리상담을 받게 되었는데, 같은 선생님을 찾아간 덕에 졸지에 부부상담으로 연결이 되어 버렸다. 어느 순간 내가 상담을 가는 날에도 선생님은 남편과 내 차트를 동시에 꺼내어 놓고 남편의 안부를 물었다. 그렇게 내가 얘기하는 나와 남편이 이야기하는 나, 그리고 남편이 얘기하는 본인과 아내가 얘기하는 그에 대한 정보를 다면적으로 습득한 선생님이 우리에 대해 판결을 내려 주셨다.


 선생님의 판결은 굉장히 의외였는데, 남편은 완전히 내향적인 사람이고 나는 대단히 외향적인 사람이라는 거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머리 위로 큰 물음표가 떠버렸다. 쉽게 동의할 수 없었던 이유는 같은 직장을 1년 가까이 다녔던 우리는 서로의 성격을 보고 반해서 결혼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주로 활달했고, 신기하게도 회사의 모든 사람과 친했으며 옆 팀에 가서도 큰 소리로 파이팅을 외치고 오는 사람이었다. 반면 나는 소심해서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딱 내 일만 조용히 처리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그는 내향적이고 나는 외향적이라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선생님 말씀이 에너지를 밖에서 얻느냐 안에서 얻느냐의 차이로 내향성과 외향성이 결정되는데, 남편의 경우 조용히 쉬면서 자기 안에서 에너지가 충전되는 타입이고 나는 밖으로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것을 보며 에너지를 얻는다는 것이다.


 이제야 이해가 되는 그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지난 주말에도 서울로 맛집을 찾아 다녀왔다. 길이 막혀서 1시간이나 걸려 도착했는데, 남편에게 밥 먹고 어디 갈까? 했더니 우리 집 앞 스타벅스에 가고 싶다는 거다. 아니 1시간이나 운전을 해서 이제 도착한 지 20분인데 집에 가고 싶다고? 분명 빨리 동네로 가서 커피 마시고 집으로 쏙 들어가 버리려는 거겠지.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꼭 그래야겠냐며 설득과 협박을 더해서 식당 근처 카페에 갔다. 그는 억지로 끌려왔지만 도착해서는 커피가 맛있다고 두 잔이나 마시고, 케이크도 맛있다고 똑같은 케이크를 한 조각 더 포장하기까지 했다. 막상 나와서는 또 이렇게 좋아하면서... 집 밖 순이인 나는 집돌이 남편을 이해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


그날 갔던 맛집



 오늘은 남편의 성향에 맞춰보고자 하루 종일 집에서 쉬기로 한 날이다. 그래도 건강을 위해 최소한 근처 공원 산책 딱 1시간만 하기로 어젯밤부터 약속을 했다. 막상 나갈 시간이 되니 그는 30분씩 계속 외출을 미루더니 엄마 등쌀에 못 이겨 학원에 끌려가는 아이처럼 세상 우울한 표정을 하고 따라나섰다. 산책할 때 나는 따뜻한 햇살이 좋았고, 난간으로 떨어질 듯 걷는 나를 자기 쪽으로 당기는 그의 섬세한 손 힘이 좋았다. 우리가 같이 어디까지 걸을지 정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손을 잡고 같은 보폭으로 걷는 게 좋았다.


 반면 그는 어땠을까? 집에 돌아오자마자 '우리 집이 최고'라며 밖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세상 행복해하는 그의 얼굴을 보면 내가 괜한 짓을 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야말로 동상이몽. 다음부터는 그냥 혼자 나가자 다짐하지만, 나는 오늘도 남편이 먼저 산책 가자고 말하는 햇살 좋은 주말을 꿈꾼다.




산책하며 만난 산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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