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짐니 Jun 20. 2021

취향까지 달라질 필요는 없잖아요

각자 좋아하는 게 생겼다

 남편과의 연애 초기에는 <도깨비>라는 드라마가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었다. 매회 방영될 때마다 강풍(強風)을 뛰어넘은 광풍(狂風)이 휘몰아쳤다. 나는 마케팅을 하는 사람으로서 도깨비에 나온 명대사를 콘텐츠에 활용하기도 했지만 도깨비는 1회도 보지 않았다. 그리고 내 주변에 도깨비를 보지 않는 사람이 딱 1명 더 있었는데 바로 지금의 남편이다. 남들이 도깨비에 미쳐있을 때, 우리는 서로에게 미쳐있었다. 머릿속의 99.9%가 서로로 가득 차서 매일매일이 설레고, 너와 나 외에 다른 어떤 것도 궁금하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 다 보는 도깨비가 궁금하지 조차 않다는 게 우리 역시 신기했다. 그도 나와 마찬가지로 서로의 생각만으로도 넘치도록 충만해서 다른 사람들이 무얼 좋아하는지 혹은 요즘 유행하는 콘텐츠가 어떤 건지 찾아보고 싶지도 않고 그럴 시간도 없다고 했다. 당시 우리는 무엇이든 함께 보고, 어디든 함께 가고, 같이 느끼고, 같이 좋아했다.


함께 갔던 성수동의 작고 예쁜 서점.



 몇 주 전 주말, 나가고 싶다고 발을 동동거리는 내 성화에 못 이긴 그와 함께 성수동에 갔다. 요즘 인스타그램에서 핫하다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인테리어 소품점을 구경하는데 그의 에너지가 점점 바닥나고 있음이 느껴졌다. 관심사를 만나 눈을 반짝이는 나와 달리 급속도로 낯빛이 어두워진 그. 그 후 작고 예쁜 서점에 갔는데 그곳에서 남편은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나는 괜찮으니 마음껏 보고 와"라고 말했다. 그는 날 위해 끝까지 기다려줬지만, 집에 돌아와서 연애시절에는 함께하던 것들이 지금은 왜 힘들어졌을까 고민했다. 20~30대 여성들의 관심사가 모여있는 성수동 거리에 40대 남성의 관심사가 있을 리 없었다. 나는 주로 패션, 인테리어 용품, 그리고 책에 관심이 많고, 남편은 주로 자동차, 가전제품, 청소용품을 궁금해한다. 슬프게도 우리의 관심사에 교집합이 없다는 얘기다.


 요즘 평일 저녁의 우리 집 풍경을 설명하자면, 남편은 주로 자동차 관련 유튜브를 보고 나는 거실에서 넷플릭스를 본다.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각자 다른 것을 하다가 남편의 휴대폰 속 유튜버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면, 내가 눈을 흘기고 남편은 안방으로 피신한다. 이제는 한 공간에 같이 있지만 각자 다른 걸 좋아하게 되었다.


 또 서로에게 미쳐 유행하는 콘텐츠를 놓치는 것도 이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킹덤> 시즌2가 나왔을 때에는 퇴근 후 매일같이 2-3편씩 그와 함께 정주행을 했다. 남녀노소 다 좋아하는 <슬기로운 의사생활>도 그와 함께 챙겨본다. 예전에는 서로를 보느라 다른 것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은 좋아하는 것을 보느라 서로를 보지 못한다. 연애시절의 우리에게는 도깨비가 필요 없었는데, 지금의 우리에게는 아주 강력한 도깨비가 계속해서 필요하다는 거다. 좋아하는 것이 같을 때는 그나마 다행이다. 동시에 흥미를 느끼는 콘텐츠를 함께 보는 시간이 평일 중 유일하게 우리가 소통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결혼을 할 때는 우리가 달라질 거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다. 20대 시절의 나와 30대의 나만 비교해봐도 삶의 방향이나 가치관과 관심사가 이토록 다른데, 왜 결혼하기 전에는 각자 계속 변화하는 우리가 꾸준히 달라질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내가 달라지듯 그 역시 나이를 먹고 매 순간 새로운 것들을 접하며 생각하는 바와 좋아하는 것들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나는 결혼할 당시의 그뿐만 아니라 앞으로 무수히 변해갈 그의 모든 모습을 사랑할 각오를 하고 결혼을 했을까? 답은 아니다. 당시의 감정, 당시의 모습만을 보고 그것이 영원하리라 생각하고 결혼을 택했던 것 같다. 아마도 대다수의 젊은 부부들이 나와 같지 않을까 싶다. 나는 별다른 각오 없이 결혼생활을 시작했지만, 오히려 변화무쌍한 그를 보며 더 깊은 내면의 사랑이 생겨났다. 아 이 사람이 내가 평생 사랑해야 할 사람이구나. 과거에는 한도 없이 발랄하기만 했지만, 오늘은 우울한 모습도 가진, 미래에는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이 사람과 앞으로 5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하겠구나. 그 사이에 남편과 나는 또 얼마나 많이 변화해서 서로를 힘들게 할까. 결혼 생활은 두 인간을 성숙하게 하기 위한 완벽한 조건을 갖췄다. 문득, 나이가 어려도 결혼을 한 사람은 어른으로 대접해주던 조상들의 문화가 이해가 된다.






<다른 사람과 살고 있습니다>는 매주 일요일 연재 중입니다.




이전 04화 내 남편은 게으른 완벽주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